월급날마다 네이버페이 결제 내역을 확인하고, 남은 잔돈으로 업비트에서 코인을 사던 투자자라면 익숙한 두 플랫폼이 있습니다. 그 둘의 '뒤편'이 이제 아예 한 지붕 아래로 들어가는 순간이 머지않았습니다. 국내 디지털 금융·자산 시장의 판을 갈아엎을 대형 합병이 공식화되기 직전입니다.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은 이번 주 말 합병 구상을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합니다.
오는 26일 두 회사는 각각 이사회를 열어 포괄적 주식 교환 방식의 합병 안건을 처리하고, 27일 성남 네이버 제2 사옥인 '네이버 1784'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날 회견에는 송치형 두나무 회장(이사회 의장)과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냅니다.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 오경석 두나무 대표,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 박상진 네이버파이낸셜 대표 등 양측의 핵심 의사결정 라인도 모두 참석할 계획입니다. 업비트와 네이버페이를 각각 키워 온 핵심 인물들이 한 무대에 서는 만큼, 단순히 '투자 이벤트'가 아니라 두 기업이 그려 온 큰 구상이 처음 공개되는 자리라는 관측이 적지 않습니다.
합병 방식은 두나무 지분을 네이버파이낸셜 신주와 교환하는 포괄적 주식 교환 구조입니다. 시장에서는 두나무의 기업가치를 약 15조 원, 네이버파이낸셜을 약 5조 원으로 추산하며 1대 3 교환 비율을 유력하게 보고 있습니다. 비율이 그대로 확정되면 두나무 주주는 모두 네이버파이낸셜 신주를 받게 되고, 두나무는 네이버파이낸셜의 100퍼센트 자회사로 편입됩니다.
송치형 회장과 김형년 부회장은 기존 보유 지분을 통해 통합 법인 지분 약 30퍼센트를 확보해 최대주주 그룹에 오르게 됩니다. 반면 네이버는 현재 69퍼센트인 네이버파이낸셜 지분율이 약 17퍼센트까지 줄어들 전망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두나무 측 지분율이 우위에 서는 구조지만, 실제 경영권은 네이버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체계 안에서 두나무를 계열사로 편입하려면, 두나무 측이 보유한 의결권 상당 부분을 네이버에 위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분과 의결권이 분리되는 이런 구조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형태라는 점에서 '지배 구조 실험'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두 회사가 내세우는 합병 명분은 뚜렷합니다. 국내 1위 간편결제 플랫폼과 1위 가상자산 거래소가 결합해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네이버페이·쇼핑·콘텐츠·검색 등 네이버 전반의 서비스에 두나무 블록체인 인프라와 토큰 기술을 연결해, 결제·투자·보상·자산 관리가 한 플랫폼 안에서 이어지는 모델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웹투(Web2) 기반 빅테크와 웹쓰리(Web3) 인프라가 결합하는 첫 본격 사례라는 점에서, 디지털 자산의 제도권 편입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그러나 합병까지는 넘어야 할 절차가 적지 않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기존 주주 권익 침해 여부, 간편결제 잔액과 가상자산 예치금이 뒤섞이면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등을 집중적으로 심사할 전망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결제·디지털 자산 시장에서의 지배력 변화를 놓고 기업결합 심사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네이버페이와 업비트가 결합하면 결제와 코인 거래가 한 플랫폼에서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만큼, 토스·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경쟁 구도와 중소 결제업자에 대한 영향까지 폭넓게 분석할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자산 투자자에게도 이 빅딜은 단순한 기업 결합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가격 변동성이 여전히 크지만 업비트가 네이버 금융 생태계 깊숙이 들어온다는 점 자체가, 제도권 금융과 디지털 자산 시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장 분위기만 보면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11월 24일(미 동부시간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약 8만 7천달러로, 최근 기록한 최고가 약 12만 6천달러 대비 30퍼센트 가까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일주일 기준으로도 7퍼센트 안팎 하락하며 투자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시장의 체질은 과거와 다르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여전히 약 1조 7천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전체 디지털 자산 시장도 조정을 거치며 급등·급락 중심에서 점차 현물·ETF 중심의 안정적 구조로 이동하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레버리지 의존도가 낮아지고 실수요 기반의 투자 비중이 커지면서, 과거처럼 극단적 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줄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두나무·네이버 합병이 단기 가격 상승을 즉각 불러오지는 않더라도, 디지털 자산 시장의 중장기 구조 자체를 바꿔놓을 변수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매 하락장마다 반복되던 '폭락론' 대신 제도권 금융과 가상자산 인프라의 결합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 분위기입니다.
업비트가 네이버 생태계의 한 축으로 편입되는 이번 합병은, 코인이 단순 투기를 넘어 생활 금융과 자본시장 인프라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 시험하는 첫 관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