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에 나서며 주요 그룹 총수들이 동행한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해외 일정 대신 서울 소공동 현장 점검을 택했습니다. 재계에선 내주로 예상되는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두고 그룹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신 회장은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 본점 등을 잇따라 찾았습니다. 정장 차림이 아닌 일상복에 러닝화 브랜드 온의 클라우드 몬스터 2를 신고 등장해, 예정에 없던 기습 순시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대외 행사장 단상 대신 매장과 로비, 동선 곳곳을 직접 둘러보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전언입니다.
신 회장이 신은 '온 러닝화'의 가격은 20만원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식보다는 속도와 실무를 강조하려는 목적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더해졌습니다.
같은 시각 이재명 대통령은 UAE에서 한·UAE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참석해 양국 경제인들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가 대거 이름을 올렸습니다. 식품 업계를 대표해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등도 참석했습니다. 반면 롯데는 이번 공식 참석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롯데의 현재 사업 여건이 반영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롯데는 AI, 방산, 에너지, 인프라 등 이번 중동 세일즈 외교의 주요 의제와 직접 연결돼있지 않고, 화학과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만큼 당분간 국내 사업 정비와 수익성 개선에 무게를 두는 게 아니겠냐는 분석입니다. UAE 국빈 일정이 진행되는 날 신 회장이 서울 소공동 호텔과 백화점 현장을 찾은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롯데그룹은 이르면 다음 주 2026년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입니다. 계열사 전반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번 인사가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유통과 화학, 호텔·면세 등 핵심 사업 재편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실적 지표만 봐도 위기감이 읽힙니다.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의 3분기 매출은 4조 7861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8% 줄었습니다. 영업손실은 1326억 원으로, 적자 폭은 줄었지만 여전히 본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시황 악화 속에서 기초 화학 중심 포트폴리오가 힘을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통 계열사 롯데쇼핑도 사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가 뼈아픕니다. 강남 등 핵심 점포를 앞세운 백화점 사업은 선방하고 있지만, 대형마트·슈퍼, 전자제품 양판점, 이커머스 등은 '소비 쿠폰 사용처 제외' 여파 등으로 인해 적잖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인건비와 임대료, 물류비 부담까지 겹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 회장이 UAE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아닌 소공동 현장을 택한 행보는 그룹 안팎에 여러 메시지를 던집니다. 대외 이벤트보다 국내 핵심 자산인 호텔과 백화점, 나아가 유통 포트폴리오 전반을 다시 점검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정기 인사를 앞두고 각 사업부에 긴장감을 주려는 의도가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번 인사에서 유통과 화학 부문의 최고경영진 교체, 조직 슬림화, 적자 사업 정리와 같은 강도 높은 쇄신안이 나올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합니다. 롯데케미칼의 해외 자산 운용과 투자 우선순위 조정, 롯데쇼핑의 재편 여부도 관전 포인트로 꼽힙니다. 소공동 롯데호텔과 백화점 본점을 직접 찾은 신 회장의 행보가 인사와 구조조정 방향을 가늠해보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5대 그룹 묶이는 롯데가 이번 UAE 비즈니스 행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장면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금 롯데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해외 일정보다 실적과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내부 쇄신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빈 방한과 해외 세일즈 외교가 이어지는 와중에 소공동 현장을 택한 신 회장의 러닝화 행보가, 롯데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이라는 평가도 그래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