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의 연말 정기 인사가 임박하면서 재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부회장단 개편 여부로 쏠리고 있습니다. LG전자 조주완 사장이 차기 부회장 승진 1순위로 굳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조 사장 못지않은 무게감을 지닌 또 다른 이름이 꾸준히 회자됩니다. LG디스플레이를 이끌고 있는 정철동 사장입니다.
조 사장이 TV·가전에 집중됐던 LG전자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장과 공조, 웹OS 기반 서비스까지 확장하며 체질을 바꿨다면, 정 사장은 만성 적자 늪에 빠져 있던 LG디스플레이를 OLED 중심 회사로 돌려 세운 주역으로 평가받습니다. LG반도체·LG디스플레이·LG화학·LG이노텍을 두루 거치며 40년 가까이 생산·기술·부품·소재 분야에 몸담았던 전형적인 'LG식 테크닉형 CEO'이기도 합니다.
실적만 놓고 보면 정 사장을 부회장 후보군 맨 앞줄에 올려놓을 근거는 충분합니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6조9천570억 원, 영업이익 4천31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직전 분기 연속 적자에서 단숨에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3천485억 원으로 집계돼, 4년 만의 연간 흑자 전환이 사실상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사업 구조 역시 수치만큼이나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정 사장 취임 이후 LG디스플레이는 LCD TV 사업에서 사실상 철수했고, 스마트폰·IT·자동차 등 중소형·대형 OLED 중심의 고부가 가치 제품군으로 재편에 속도를 냈습니다.
그 결과 3분기 OLED 매출 비중은 65%에 달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회사 내부에서는 "OLED 중심 체질 개선이 비로소 숫자로 증명되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재계는 조주완 사장과 정철동 사장을 각각 전장·공조와 디스플레이라는 LG의 양대 B2B 축을 대표하는 투톱으로 묶어 바라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LG디스플레이의 흑자 전환이 가시화되자 언론에서는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부회장에 가까워진 CEO"라는 표현이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성과의 이면을 둘러싼 논쟁도 만만치 않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정 사장이 투입된 2023년 말 이후 LCD 구조조정과 함께 사실상 상시적 조직 슬림화를 진행해 왔습니다. 희망퇴직만 해도 지난해 두 차례에 이어 올해는 생산직에서 사무직까지 확대해 근속 3년 이상 직원에게 최대 36개월치 급여와 자녀 학자금까지 조건으로 제시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최근 1년 새 회사를 떠난 인원이 2,300명 안팎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3분기 실적에는 이런 구조조정의 영향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습니다. 희망퇴직 시행에 따른 일회성 비용만 400억 원 수준으로 반영됐고, 비용 절감 효과를 감안하면 영업이익은 더 크게 나왔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만큼 실적 반등의 배경에 '조직의 고통 분담'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회사는 흑자를 냈지만 내부에서는 "실적은 좋아졌지만 직원들의 피를 짜낸 결과 아니냐"는 푸념도 흘러나옵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으로 보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반복된 희망퇴직이 과연 '희망'이라는 표현과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 같은 부담이 정 사장 개인에게 작지 않은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대외 시선도 완전히 우호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해 유상증자 등 자본 확충 과정에서 불거진 재무 부담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고, 높은 부채비율과 구조조정이 결합되면서 "정철동 매직은 과장됐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선택은 구광모 회장의 몫입니다. 조주완·정철동 두 사람을 동시에 부회장단에 올려 B2B 중심 체제를 가속화할지, 조 사장 한 명만 승진시켜 그룹 균형을 유지할지, 아니면 올해 인사에서 변화폭을 최소화할지에 따라 LG의 향후 전략 지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적을 앞세운 승진이냐, 조직 피로도와 대외 이미지를 감안한 신중 인사냐. 이번 연말 인사는 정철동 사장뿐 아니라 구광모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관측이 조용히 힘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