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만두를 굽다가 프라이팬을 태우는 경험. 살면서 한번쯤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경험이 혁신의 시작이 됐습니다.
일본 냉동만두 시장 점유율 1위 '아지노모토(Ajinomoto)'는 1972년 일본 최초의 냉동만두를 출시했습니다. 당시 냉동고와 전자레인지가 막 보급되던 시기, 회사는 '누구나 집에서 쉽게 요리할 수 있는 교자'와 '영구개량'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이후 1997년, 회사는 기름 없이 물만 부어도 바삭한 '날개 달린 교자'를 만들 수 있도록 특수 코팅 방식 개발에 나섰습니다.
이 기술은 대히트를 쳤습니다. 일본 내 단품 매출액 기준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 연속 1위를 기록했으며 냉동 교자를 일본의 '국민 간식'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비자 조사 과정에서 개발진은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많은 이들이 설명서에 적힌 양보다 훨씬 많은 물을 붓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기름도, 물도 전혀 필요 없는 교자를 만들자"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연구진은 하루 100개 이상의 교자를 굽고 먹으며 특수 코팅을 미세 조정했습니다. 그 결과 40년 만에 완전히 리뉴얼된 '기름·물이 필요 없는 교자'가 탄생했고, 출시 후 매출은 전년 대비 130% 급등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되던 2023년 5월, SNS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옵니다. "물이랑 기름 필요 없다며, 거짓말쟁이"라는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에는 프라이팬 바닥에 만두가 눌어붙어 있었습니다.
아지노모토 SNS 담당자 후쿠아라 레이코 씨는 고객에게 "혹시 연구를 위해 프라이팬을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자 그룹장 가스무라 케이타 씨가 이렇게 제안합니다. "차라리 전국적으로 프라이팬을 모읍시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프라이팬 챌린지(Frying Pan Challenge)'였습니다. 단 3일 만에 전국에서 3,520개의 프라이팬이 본사로 도착했다고 합니다.
회사가 받은 프라이팬 대부분은 오래되고 코팅이 벗겨진 상태였습니다. 고객들은 저마자 편지에 버릴 수 없었던 추억을 빼곡히 담아 함께 전달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팬들에 '엘리트 팬', '지옥 팬' 등 이름을 붙여가며 하나하나 분석했습니다.
엔지니어 이시아마 신노스케 씨는 하루 40번씩 굽고, 설거지를 반복하며 6개월간 개선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에 12개 중 전부 들러붙던 팬에서 26%는 완전히 떨어지고 46%는 부분적으로 분리되는 수준까지 개선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홍보팀은 모인 프라이팬 3,520개를 하나하나 3D 스캐닝하고 현미경으로 표면을 분석했습니다. 이후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프라이팬 아카이브'를 공개해 누구나 프라이팬 데이터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심지어 팬을 녹여 자원화한 뒤 일본 주방 브랜드 '4W1H'와 협업, '아지노모토 교자 전용 프라이팬'을 출시했습니다. 사측은 프라이팬을 기부한 고객들에게 손편지와 함께 해당 제품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리콜'이 아닌 고객의 불만을 브랜드 유산으로 만든 사례로 꼽히며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비비고'(CJ제일제당), '고향만두'(해태제과), '더미식'(하림산업) 등 국내 대표 브랜드들이 경쟁적으로 신제품을 쏟아내는 가운데, 소비자 경험에 집중한 이런 캠페인은 브랜드 신뢰를 쌓는 강력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이런 캠페인 도입했으면 좋겠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비비고 만두'를 앞세워 일본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인 CJ제일제당에게는 이런 참여형 경험이나 플랫폼 설계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은 일본 치바현 키사라즈시에 약 1,000억 원을 투자한 현지 전용 공장을 완공하며 본격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국내 식품기업 최초로 일본 현지에 직접 생산시설을 세운 사례로 이는 단순한 수출이 아닌 '현지화' 전략의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합니다.
일본 사업이 단순 유통·생산 확대에서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주방 경험'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브랜드의 현지화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