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6일(화)

400㎜ 폭우 뚫고 배달 간 광주 라이더... "배달비 많이 주더냐" 묻자 한 말이

폭우 속 위험한 배달, 개인의 무모함이 아닌 구조적 문제


광주에 하루 동안 400mm가 넘는 '괴물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17일, 허리까지 차오른 물살을 뚫고 배달 업무를 수행한 라이더의 모습이 소셜미디어(SNS)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배달 기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라면서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의 무모함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Instagram 'gloforok'


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광주에서 샐러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자신의 SNS에 "7월 17일 오후 5시 물이 허리까지 찼는데 배달 픽업해가신 전설의 기사님을 찾는다"는 글과 함께 영상을 공유했습니다.


매장 앞 CCTV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이 영상에는 폭우로 침수된 도로를 건너 음식을 픽업하는 배달 기사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영상 속 배달 기사는 도로 맞은편에 오토바이를 주차한 후, 허리까지 차오른 물살을 헤치며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매장 직원 역시 깊은 물속에서 비닐봉투에 담긴 음식을 기사에게 전달했고, 기사는 한 손에는 휴대전화, 다른 한 손에는 포장된 음식을 들고 위험한 물길을 다시 건너갔습니다.


몇 차례 휘청거리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기사는 무사히 도로를 건너 오토바이로 돌아갔습니다.


Instagram 'gloforok'


기록적인 폭우 속 위험을 무릅쓴 배달


당시 광주에는 하루 동안 426.4mm의 비가 내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7월 일 강수량을 기록했습니다.


이로 인해 영산강과 소태천, 광주천, 서방천 등의 수위가 크게 높아졌고, 2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 피해와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A씨는 영상이 화제가 되자 당시 상황을 추가로 설명했습니다.


매장은 처음에 빗물이 들이닥쳐 침수되었다가 물이 빠진 후 배달 영업을 재개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불과 20~30분 만에 다시 폭우가 쏟아져 매장이 침수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3일 호우경보가 발효 중인 광주시 광산구 운남동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이 폭우에 서행하고 있다. / 뉴스1


A씨는 접수된 배달 주문을 취소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앞서 들어온 주문의 배달 기사가 도로 건너편에 도착한 상태였습니다.


이 영상의 주인공이라고 밝힌 B씨는 댓글을 통해 "도로 침수와 통제로 오토바이 통행이 불가능해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도로를 건너는 수밖에 없었다"며 "물살이 세서 정신을 못 차리면 쓸려갈 정도였고, 경찰도 건너오지 말라고 했지만, 고객님께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다시 건너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B씨는 또한 자신이 무모하게 행동했다는 비판에 대해 "도로가 침수된 줄 모르고 콜을 잡은 것"이라며 "도로에 물이 빠져 청소까지 진행되는 것을 직접 보고 정상화된 줄 알고 콜을 수락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도로가 갑자기 다시 물에 잠긴 상태였고, 이미 멀리서 콜을 잡고 온 상황에서 배달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플랫폼의 구조적 문제 지적


B씨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배달 플랫폼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사진 = 인사이트


"위험한 상황에서도 콜이 배정되고, 취소 시 페널티가 부과되는 시스템이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이런 구조 안에서 일하는 라이더가 겪는 현실도 함께 봐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 행동이 목숨 걸 만큼의 대가가 아닌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플랫폼과 고객 사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이 영상이 단순한 화제거리로만 소비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예상치 못한 폭우, 폭설, 폭염 등이 잦아지면서 배달 기사들의 노동 환경은 사회적 논의의 중요한 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배달 플랫폼들은 악천후 상황에서 배달 운임에 할증을 부과하고, 기상 악화 시 배달이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를 제공하며, 심각한 기상 상황에서는 배달 서비스 범위를 축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배달 기사들은 "배달 운임이 줄면서 기상이 악화돼도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배달의민족이 지난 4월 서울 지역 기본 배달료를 3000원에서 2500원으로 낮추고 기본 배달료 적용 거리는 675m에서 1400m로 늘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


이로 인해 최소한의 수입을 얻기 위해 기사들이 무리한 배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라이더유니온이 지난해 11월 278명의 라이더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가 "지난해에 비해 근무시간이 늘어났다"고 답했으며, 90%는 "수입이 줄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중 44.2%는 월 평균 61만원에서 90만원가량 수입이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79.6%의 응답자가 눈이나 비가 내리는 기상 악화 상황에서도 높은 운임을 위해 일하게 된다고 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