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무죄 확정 11일 만에 터진 낭보
몇 년간 이어진 사법 리스크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에게 무거운 족쇄였습니다. 대외 활동과 대형 투자·M&A 등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제약이 따랐고, 이로 인해 그룹 전반의 전략 실행에도 속도 조절이 불가피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7일, 대법원이 이 회장에 대한 모든 혐의에 무죄를 확정하면서 상황은 일거에 반전됐습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족쇄가 풀린 만큼, 경영 능력이 곧 입증될 것"이라는 기대가 제기됐습니다. 그 말을 사실로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1일이었습니다.
삼성전자가 28일 공시한 바에 따르면, 총 22조7648억 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 상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직접 자신의 SNS를 통해 "삼성의 텍사스 신공장은 테슬라 차세대 AI6 칩 생산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글로벌 파운드리로 우뚝 서
사실상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전기차 기업과 손잡고 차세대 AI칩을 생산하는 '글로벌 파운드리'로 우뚝 선 셈입니다.
이 계약은 삼성전자 지난해 전체 매출(300조8709억 원)의 7.6%에 해당하며, 반도체 부문 단일 고객 기준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계약 기간도 8년 이상(2025년~2033년)으로, 장기적 신뢰에 기반한 협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는 그간 AI4칩은 삼성, AI5칩은 대만 TSMC에 맡겼지만, 차세대 AI6칩은 다시 삼성 품에 안겼습니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선택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29일 오전, 삼성전자 주가는 상승세로 출발하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반영했습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2.3% 가까이 오르며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습니다.
수율 개선의 성과, 다시 살아난 테일러 공장
테슬라가 맡긴 차세대 AI6칩은 업계에서 3나노미터 또는 2나노미터급 초미세 공정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TSMC만이 주도하던 첨단 선단공정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기술 신뢰’를 회복했다는 방증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머스크 CEO는 SNS를 통해 "165억 달러는 최소치일 뿐, 실제 생산량은 몇 배 더 높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거래 규모의 확대 가능성까지 시사했습니다. 이번 계약이 ‘단발성’이 아닌, 연속적 파트너십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생산은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위치한 삼성의 첨단 파운드리 공장에서 이뤄질 예정입니다. 이 공장은 2021년 착공 이후 2024년 말 완공되었지만, 대형 고객 부재로 가동이 지연돼 왔습니다. 그러나 테슬라 AI칩이 본격 생산되면 테일러 공장은 그룹 내 전략 거점으로 활력을 되찾을 전망입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조해온 '미국 내 반도체 현지 생산' 기조와 정확히 부합한다는 점에서, 삼성은 정치적 리스크 해소와 공급망 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된 셈입니다.
'아픈 손가락'에서 '전략 핵심'으로... 이재용의 뚝심 통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은 한동안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2019년 이 회장이 시스템 반도체 비전을 발표하며 133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수율(정상품 생산 비율) 문제와 TSMC의 독주에 밀려 매년 수조 원대의 적자를 기록해 왔습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67.6%, 삼성전자가 7.7%에 불과했습니다. 이로 인해 내부에서는 회의론이, 외부에서는 전략 수정 요구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지난해 말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을 갈망하고 있다"며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기술 개발과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아왔습니다. 이번 테슬라 수주는 이러한 뚝심이 만들어낸 결과이자, '아픈 손가락'이 '보물손'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