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20년 전 한 원로 코미디언이 TV에 나왔다. 개그 프로그램이 아닌 금연 광고였다.
그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가쁜 기침을 했다. "국민 여러분 담배 끊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해 오늘(27일) 숨졌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 희극인 중 한 명인 이주일이다.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로 1980년대 한국 방송계를 이끌었던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흡연으로 인한 '폐암'이었다. 본래 애연가였지만 1991년 11월 7대 독자였던 외아들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담배가 크게 늘었다.
그가 폐암 판정을 받은 건 2001년 10월이었다.
2002년 1월부터는 금연 광고에 출연했다. 광고 속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저도 하루에 두 갑씩 피웠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흡연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전에 진출하고 이탈리아전에서 승리했을 때 암까지 이겨내고 건강을 반드시 되찾겠다던 그는 향년 61세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주일은 세상을 떠났지만 금연 광고 속 그의 호소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금연 광고가 흔하지 않았던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이주일을 비롯해 농구선수 우지원, 지휘자 금난새, 방송인 임성훈 등 당시 파급력이 높았던 연예인들이 등장해 본격적으로 금연을 외치기 시작했다.
식당과 사무실 등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아무렇지 않던 시대, 금연을 돌아보게 되는 출발점이 됐다.
2001년 60.9%였던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2005년 51.6%로 뚝 떨어졌다. 이주일의 광고로 인해 흡연 폐해가 '남 일이 아니다'는 인식이 급격히 퍼졌다.
지난 5월 31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제35회 세계 금연의 날' 기념식 및 학술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이주일을 AI로 복원해 공개했다.
가상 인간으로 구현된 이주일은 스크린에 나타나 다시 한번 "저도 하루 두 갑씩 피웠습니다. 이제는 정말 후회됩니다"라며 금연을 호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담배 판매량과 흡연자 1인당 피우는 담배의 양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흡연은 가정을 파괴합니다"란 말은 이주일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오늘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