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화)

서울대병원 의사가 본 '흙수저'가 병에 걸렸을 때 '부자'와 다른 점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응급남녀'


[인사이트] 김재유 기자 = "아플 때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가혹하게 들리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이다. 돈이 있어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그래야 병에 걸려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가혹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가슴 아픈 사연이 한 대학병원 교수를 통해 전해졌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교수가 전한 "당뇨병을 앓고 있는 김영호씨와 김영호씨"라는 제목의 사연이 이러했다.


2015년, 교수는 두 명의 김영호씨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당시 61세였고 고혈압과 당뇨병, 고지혈증을 앓고 있었다.


다만, 한 김영호씨는 서울시립보라매병원에 다른 김영호 씨는 서울대병원 특실에 입원했다.


보라매병원에 입원한 김영호씨는 달동네에서 나고 자라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해 쪽방촌에 살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흙수저'였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


공사 현장 등에서 몸쓰는 일로 힘겹게 생계를 이어나가던 그는 30대 초반에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혈압을 떨어뜨리기 위해선 식단조절이 중요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에게 본인 몸을 챙기며 좋은 음식을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고된 노동 후 마시는 막걸리는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몸에 이상을 느껴 다시 병원을 찾은 그는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6개월에 한 번씩 찾아와 몸상태를 체크해야된다는 의사에 말에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1년치 약을 요구했다.


그러나 의사는 요구를 거부했고 결국 6개월치 약만 받은 채 다시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라이브'


그는 고혈압과 당뇨병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그렇게 몸은 점점 망가져갔다. 


몸을 돌보지 못한 탓에 결국 혈관이 좁아지는 협심증이 찾아왔고, 당뇨병을 방치한 탓에 '당뇨발(당뇨병성 족부 질환)'까지 진행되며 발가락 일부가 까맣게 썩어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협심증 수술 후 병원을 다시 찾지 않았다. 아니 찾을 수 없었다. 생계가 더욱 막막해져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반면 서울대병원 특실에 입원한 김영호씨는 달랐다. 대기업 이사인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웠고 삶은 평탄했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병을 돌볼 여유가 충분했다.


아프면 즉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고, 의사의 조언에 따라 약을 먹고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았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MBC '내일도 승리'


입원할 때면 아내가 항상 그의 곁을 지켰다. 그에게도 협심증이 왔지만 곧바로 병원을 찾아 시술을 받은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치료할 수 있었다. 또 그는 꼬박꼬박 약을 먹고 식단 관리를 하고 치료를 받은 덕에 '당뇨발'로 인해 발가락이 썩는 일이 없었다.


이름도 같고, 나이도 같고, 앓는 병도 같았던 두 사람이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두 김영호씨를 지켜본 서울대병원 교수는 너무나 달라진 두 사람의 운명이 빈부격차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보라매병원에 입원한 김영호씨가 더 건강하게 살았을 방법을 머릿속으로 수십 번 찾아봤지만 그건 의료의 영역이 아니었다.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걸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진 = 다산북스


그러면서 "서울대병원 특실에 앉아 있는 김영호씨를 보며 또 다른 김영호씨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은 무거워졌고 해결되지 않는 무력감이 덮쳐왔다"라고 말하며 두 김영호씨를 보면서 들었던 복잡한 심정을 고백했다.


이 '두 김영호씨 사연'은 김현지 서울대학병원 권역응급센터 진료교수가 쓴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책에 실린 내용이다.


흔히들 사람 목숨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김 교수의 두 김영호씨 사연을 보면 꼭 그렇지많은 않은 것 같다. 


결국 돈이 있어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병을 이겨낼 수 있고, 흔히 말하는 '흙수저'가 '금수저'보다 건강한 삶을 살 기회가 적은 게 이 사회의 가슴 아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