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하영 기자 = 가톨릭 생물학 교수가 밝힌 진화론, 창조론 공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눈길을 끈다.
지난 26일 더난출판사는 인간은 진정 무의미한 생존 기계에 불과한가라는 이야기를 담은 책 '인간의 본능'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진화론은 명실상부 현대인의 교양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생물학, 사회학, 언어학, 철학, 페미니즘, 심리학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다윈의 진화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화론에 불안과 의구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멍청하거나 종교적인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들일까?
브라운대학의 생물학 교수인 케네스 밀러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지적 설계론', 즉 이 거대하고 복잡한 우주가 어떤 지적인 존재에 의해 창조됐다는 이론의 허점을 지적하는 대중적 활동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생물학 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한 밀러는 이 책 '인간의 본능'에서 왜 어떤 사람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진화론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이해하려 노력한다.
오늘날 진화가 일부 사람들에게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이 하등동물과 같은 기원을 공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 인간이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 윤리, 사회, 의식, 자유의지 같은 인간 본성이 단순히 진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진화심리학의 주장은 일부 사람들에게 정서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저자는 진화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유구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류가 차지한 위치가 얼마나 숭고한지 깨닫게 된다고 역설한다.
진화의 법칙 속에는 우주에서 인간의 자리를 특별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아무리 봐도 없지만 이 사실은 결코 인간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우주와 우주 속 인간의 자리를 이해하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과학과 종교가 함께 갈 수 있다는 저자의 신념과도 이어진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꽤 많지만 그 가운데서 '자유의지'라는 인문학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서술하는 책은 드물다.
이 책은 저자가 진화를 과학적인 이해와 동시에 인문학적 방식으로 해석하기 위해 수없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과거와 현대의 문학 작품, 철학 고전, 과학 명저 등을 고루 언급하는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치우침 없이 폭넓은 교양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