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화)

조국 버리고 일본 편에 선 시인이 '변절' 전 마지막으로 쓴 충격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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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최해리 기자 = 73년 전 오늘(15일), 우리는 끔찍했던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됐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제에 저항하며 '대한독립'을 외쳤다.


하지만 독립을 위해 일본의 무력시위에 투항한 이들이 있는 한편,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의 편에 선 친일파 조선인들도 있었다.


조선의 3대 천재 중 1명이었다는 시인 최남선은 그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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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정당화하며 조선역사를 왜곡 날조하는 어용단체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최남선은 신문에 '조선문화의 일본화야말로 제일 중요한 것'이라며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사설을 기고하는가하면 조선 청년들의 학도병 권유 유세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국을 버리고 한민족 동지를 사지에 몰아 세운 최남선. 하지만 그도 과거 민족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였다.


지난 14일 방송된 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에서는 그의 과거 일대기가 재조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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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시인 최남선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손병희, 한용운 등과 함께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 운동 때 우리나라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한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심지어 기미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한 이가 바로 최남선이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그는 3.1운동 이후 감옥에서 2년 8개월을 복역하게 됐고, 출소 후 그는 서서히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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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최남선. 무엇이 그로 하여금 나라를 등지게 만들었을까.


혹자는 학업에 대한 욕심이 컸던 최남선이 독립운동가로서는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인 상황이 힘들어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해 친일의 길로 들어선 것이라 말한다.


그는 '일본과 하나가 된다면 우리도 일본처럼 부강해져서 잘 살게 되겠지'라며 암담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나라를 등진 그의 변절 행위는 독립 후 후손들에 전해지며 수십 년이 지금까지도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 


조선 제일의 명필이었던 그는 민족의 시인이 아닌 '친일파 문학가'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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