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부고 알림] 유호구님께서 2000.00.00. 숙환으로 별세하였습니다.
자신의 부고를 한 자 한 자 타자로 치고 있는 이 남자.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의사 말에 절망 대신 묵묵히 죽음을 준비하는 이가 있다.
지난달 27일 EBS '메디컬 다큐-7요일'에서는 시한부 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어느 가족의 사연이 그려졌다.
올해 72세인 유호구씨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3번의 재발과 6번의 항암치료로 때마다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끝내 백혈병 세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의사는 더 이상 치료할 방법도 약도 없다고 말했다.
희망이 없다는 소식에 호구씨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가족들도 슬픔에 빠졌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허투루 쓰기엔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가족이었다.
호구씨의 딸 윤정씨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10년 만에 어렵사리 한 대학의 영어교수 자리를 맡았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윤정씨에게 느닷없이 아버지의 시한부 소식이 들려왔다.
윤정씨는 그날로 안정적인 삶을 모두 내려놓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동안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은 윤정씨였다. 아버지도 그 마음을 알기에 살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는 치료를 받는다.
서로가 너무나 가엽고 안쓰러운 아버지와 딸이다.
아버지는 가족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이 평생 잠들 곳도 마련해두었다.
"내가 누울 자리야"라고 말하는 호구씨의 목소리가 담담해 더욱 가슴이 아프다.
가족들이 슬퍼할까봐 애써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사실 호구씨에게도 죽음은 두려운 존재다.
특히 자신이 떠나고 홀로 남을 아내를 생각하면 더없이 마음이 쓰인다.
인생의 끝자락에 왔다고 생각하니 회한이 겹친다. 더 늦기 전에 가족들과 더 많은 것을 나누고 떠나고 싶다.
오늘도 호구씨는 기도한다.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이곳에 머물게 해주세요"
[부고 알림] 유호구님께서 2000.00.00. 숙환으로 별세하였습니다.
그가 직접 써 내려간 이 부고가 '미완성'으로 남길, 모두가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