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청와대 신임 민정수석 조국의 어머니 박정숙 씨가 고액의 세금을 체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논란이 된 '웅동학원'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뜨겁다.
웅동학원은 지난 1952년 설립된 사학 법인으로, 1908년에 처음 지어진 '계광학교'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1985년 조 수석의 아버지인 故 조변현 씨가 웅동학원의 이사장을 맡았으며 2010년 어머니 박 씨가 뒤를 이어 이사장직을 역임했다. 조 수석 역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웅동학원 이사를 맡은 바 있다.
그런데 박씨가 고액의 세금을 체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웅동학원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고 있어 눈길을 끈다.
재벌사학인 줄 알았던 웅동학원이 전교생 226명뿐인 작은 시골학교로 확인됐기 때문.
게다가 웅동학원의 전신이었던 계광학교가 독립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웅동학원을 후원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웅동학원'에 얽힌 일화들을 모아봤다.
1. 1919년 웅동 지역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웅동학원 산하 '웅동중학교'는 1908년 계광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여기서 '계광(啓光)'이란 '빛을 열자'라는 뜻으로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계광학교 교사들은 1919년 4월 3일 웅동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4~5개월간 강제 휴교령이 내려졌던 계광학교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결국 일제에 의해 1933년 폐교됐다.
2. 1950년 6·25 한국 전쟁에 학도병으로 출전했다.
계광학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웅동학원은 광복 직후 고등공민학교를 세웠다.
이후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교사 1명과 재학생 46명이 학도병으로 전쟁에 출정했으며 이 중 18명이 전사했다.
이 학교를 모태로 1952년 웅동중학교가 설립됐으며, 지금도 웅동중학교는 선조들의 계광정신을 이어받아 민족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3. 매년 4월 3일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를 연다
웅동중학교는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매년 '웅동 4·3 독립만세운동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학생들은 직접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민족 선열의 숭고한 얼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웅동중학교는 제20회 '웅동 4·3 독립만세운동기념행사'를 열고 웅동 독립만세운동 발현지와 독립기념탑을 답사했다.
4.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두 차례가 강의를 왔던 곳이다
경상남도 진해에 위치한 작은 시골학교인 '웅동중학교'는 지난 2003년에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 특강을 했기 때문.
앞서 노 대통령은 2001년 6월 부산상고 2년 후배인 용동중학교 행정실장의 요청으로 처음 이곳을 찾았다.
당시 노 대통령은 "훗날 대통령이 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지키기 위해 노 대통령은 2년 뒤인 2003년 다시 한번 웅동중학교를 방문했다.
이날 그는 "항상 겸손하고 열심히 도전하고 용기가 가득했던 링컨 대통령처럼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5. '전교생 226명, 1년 자체예산 78만원'의 소규모 단설 중학교
지난 11일 중앙일보는 조 수석의 모친 박정숙씨가 웅동학원을 운영하면서 고액의 세금을 체납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해당 매체는 '웅동학원'을 재벌사학이라 칭하며 대규모 사학 재단인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웅동중학교는 한 학년 당 3개학급으로 구성된 작은 단설중학교이며, 전교생은 226명에 불과하다.
또한 해당 학교의 2017년 예산 총수입은 78만원 9천원이다. 재발사학이라고 불리기엔 턱없이 작은 규모와 열악한 재정 환경을 갖고 있는 셈.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각계 각층에서 웅동학원을 돕겠다는 후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에 웅동학원 측은 "본교에서는 후원 요청을 정중히 사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지역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학교로써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