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15℃ 서울
  • 15 15℃ 인천
  • 13 13℃ 춘천
  • 10 10℃ 강릉
  • 15 15℃ 수원
  • 17 17℃ 청주
  • 17 17℃ 대전
  • 13 13℃ 전주
  • 17 17℃ 광주
  • 16 16℃ 대구
  • 15 15℃ 부산
  • 16 16℃ 제주

이삭 쪼아먹는 참새 '유해동물'이라며 소탕작전 벌인 중국에서 일어난 비극

중국 정부가 한때 농사에 방해되는 동물로 참새를 지정한 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인사이트참새 / 뉴스1


[인사이트] 최재원 기자 =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이 통치하던 때인 1958~1960년까지 중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기근이 발생했다. 


최악의 흉년이 3년 동안 이어지며 중국인 4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다름 아닌 '참새' 때문에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대만의 장제스를 중국에서 몰아낸 마오쩌둥은 당시 중국 농민들이 겪고 있는 처참한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마오쩌둥은 농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가지 정책을 펴고, 농민들을 달래기 위해 직접 농촌마을을 찾기도 했다. 


인사이트참새를 잡은 인민군 / 光传媒


그러던 어느 날, 한 농촌 마을에 방문한 마오쩌둥이 지나가던 참새를 가리키며 "참새는 참 해로운 새다"라고 했다. 곡식을 갉아먹어 주민들을 힘들게 한다는 이유였다. 


며칠 후 마오쩌둥과 14개 성의 당서기들은 중국의 농업 발전을 위해 4가지 해로운 것(사해)를 제거하기로 했다. 이는 각각 모기, 파리, 쥐, 그리고 참새였다. 


마오쩌둥의 한마디로 인해 참새는 공공의 적이 됐다. 중국 정부는 참새가 농작물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원돼 참새를 잡았다. 1958년 한 해에 잡힌 참새만 1억 1천만 마리에 달했다. 사실상 중국에서 참새 씨가 말라버린 것이다. 


인사이트참새를 달구지에 매달아 거리 축제를 벌이는 중국 인민들 / 明见网


참새를 박멸해 농업 생산량의 증대를 노리던 중국 정부,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참새가 줄어들자 메뚜기 등 해충의 개체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늘어난 메뚜기 떼는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갉아먹었고, 사람이 먹어야 할 식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여기에 여러 요인까지 겹치면서 중국사에 길이 남을 대흉년이 벌어졌다. 굶주려 죽은 사람의 수는 공식 발표로만 2000만 명, 학계 추산 최초 3000만 명 이상이다. 


1960년대 당시 대한민국 인구가 3000만 명임을 감안한다면 그 피해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Namibian Sun


마오쩌둥이 처음 참새를 가리켰던 손가락 하나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아사자가 늘어나면서 공산당 간부들이 참새 소탕 작전을 중단하라며 마오쩌둥을 압박한 후에야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참새 소탕 작전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당시 비판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관료들의 직언을 무시했다.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었음에도 독재 권력에 의해 비판의 목소리조차 묻히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불러왔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의 시작이라고도 표현된 참새 소탕 작전은 직언과 간언, 지도자의 판단과 함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