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때, 계엄군에 붙잡혀 죽어가던 고3 동생을 도망치게 해준 공수부대원을 찾습니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80년 5월, 광주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었다.


당시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3 학생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귀가하던 중 계엄군과 대치하던 시위대에 합류해 돌을 던졌다.


그러다 맨 앞에 서게 됐고 계엄군에 붙잡히게 됐다. 계엄군은 학생을 주둔지였던 조선대 체육관으로 끌고 가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그는 "이제 죽는 일만 남았구나"라는 생각에 좌절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를 도와준 '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영화 '화려한 휴가'


새벽, 한 군인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군인은 "쉿, 지금 도망쳐. 안 그러면 너 진짜 죽는다"라며 밖으로 나가게 도와줬다.


학생은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남긴 뒤 있는 힘껏 도망을 쳤다. 뒤에서는 총소리가 났고, "저 XX 잡아"라며 계엄군이 쫓아왔다.


다행히 학교 지리를 잘 알던 학생은 산으로 넘어와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시위대를 만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집에 돌아와 가족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영화 '박하사탕'


수많은 광주시민이 이 시기에 목숨을 잃었다는 걸 상기해보면 이 학생이 느꼈던 '죽음의 공포'는 실체가 있는 공포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도망치게 해준 군인은 진짜로 '생명의 은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이 글은 지난달 31일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왔다. 글쓴이는 죽음의 공포를 느낀 학생의 형이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한 군인 덕 살 수 있었다며, 그 은인을 찾는다고 전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영화 '박하사탕'


돌아가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고 한다. "전두환은 죽일 놈이지만, 막둥이를 살려준 군인을 만나 고맙다고 인사하는 게 평생소원이다"라고.


그 군인인 동생을 풀어준 뒤 부대에서 겪었을 문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서로의 트라우마를 내려놓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글쓴이는 "동생에 따르면 그 군인은 강원도 사람이고, 자신의 동생도 제 동생 또래였다"라며 "공수부대 계엄군으로 광주에 파견돼 조선대 체육관에서 동생을 구해준 분이 누구신지 연락되면 정말 감사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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