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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원 1년, 원전급 비리는 없었다...단청 말고는 멀쩡

복원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단청이 훼손되면서 '총체적 문화제 부실 복원'사례로 꼽혔던 숭례문, 감사 결과 비리와 부실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복원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단청이 훼손되면서 '총체적 문화제 부실 복원'사례로 꼽혔던 숭례문, 감사 결과 비리와 부실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충북대 산학협력단은 화마에서 살아남은 숭례문 옛날 목재에 대한 나이테 연대 측정 결과와 각지에서 기증한 복원용 소나무의 상태를 분석한 결과를 2011년 9월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숭례문 목부재 연륜연대 분석 및 기증목재 기초조사 연구보고서'라는 제목이 붙은 총 336쪽짜리 이 보고서는 국민 기증목 중에서도 안면도에서 기증한 소나무 몇 그루를 골라 실험한 결과를 첨부했다.


압력에 견디는 힘의 일종인 '종압축강도'와 '휨강도'를 측정한 결과 안면도 소나무는 문화재 수리 전반에 대한 표준 지침서인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가 요구하는 목재 기준에 미달한다는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기증목재 SNK(안면도 소나무)는 강도 측정 결과에서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의 소나무의 기준 강도값을 충족하지 못하였다."(171쪽)


한데 이 문구 하나가 애꿎은 목숨 하나를 앗아가리라 꿈에서조차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1월18일, 청주 충북대학 한 학과재료실에서 이 대학 교수 박모(56)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옷에서 발견된 수첩에는 "너무 힘들다. 먼저 가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박 교수는 2011년 문제의 숭례문 목재 보고서를 제출한 산학협력단장이었다. 자살 직전 경찰은 숭례문 복구단에도 포함된 박 교수를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했다.


그를 부른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박 교수는 숭례문 수사를 하는데 '자문'을 하기 위해 두 번 경찰청에서 참고인 조사를 했고, 앞서 두 번은 나이테 시료 채취 현장 등에서 마주쳐 의견을 청취한 적은 있지만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때 경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변에서는 증언했다. 다시 말해 경찰은 자문을 받고자 박 교수를 불렀다고 말했지만, 실제 그와 함께 조사를 받은 사람들은 증언이 확연히 다르다. 자문을 위한 소환이 아니라 피의자 수준에 가까운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경찰이 집중 추궁한 대목은 안면도 기증 소나무에 대한 분석 결과였다. 즉, 경찰은 박 교수가 일부러 안면도 소나무에 대한 분석 결과를 좋지 않게 쓰지 않았냐고 추궁했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문화재청에서는 박 교수가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안면도 소나무는 숭례문 복원에서 기둥이나 들보와 같은 대경목(大梗木)으로 쓰지 않고 서까래 등으로 사용했다. 대신 문화재청은 부족한 소나무를 숭례문 목재 공사를 책임진 장인인 신응수 대목장한테서 구해다 썼다.


이에 주목한 경찰은 박 교수가 신 대목장을 도와주기 위해 일부러 안면도산 소나무의 부적합을 판정했다고 의심한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추궁을 견디지 못한 박 교수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다.


요란했던 문화재 비리...감사 결과 이달 중 나올 예정
 

목조건물에서 단청은 사람으로 치면 '화장'과 같은 것으로 단청 박락(벗겨짐)이 큰 결점이라고는 할 수 없다. ⓒgoogle/lushiwha.tistory.com



지난해 5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인 복구를 알린 숭례문. 하지만 숭례문은 그 해 10월18일 단청이 이미 훼손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총체적 문화재 부실 복원' 사례로 꼽히기 시작했다. 숭례문 자체로만 보면 목구조에도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 기둥이 갈라졌다는 보고가 있었는가 하면, 전통방식에 따라 제작했다는 기와 또한 겨울에는 동파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일부 언론이 숭례문뿐만 아니라 문화재 수리현장에서 그 자격증이 광범위하게 대여된다든가, 석굴암과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또한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자 원전비리에 준한다는 지탄이 박 대통령에게서 터져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런 언급을 계기로 경찰과 감사원은 문화재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와 감사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경찰 수사 결과는 이미 나왔고, 감사원 감사 결과도 이달 중으로 나올 예정이다. 감사원 감사는 제도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므로, 요란했던 이른바 '문화재 비리'는 경찰 수사로 일단은 큰 그림은 나왔다는 것이 문화재계의 평가다.


숭례문 복원과정, 비리와 부실 없었다..그 외 문화재 분야의 고질적 병폐 드러나


우선 숭례문으로 국한하면 단청 박락(벗겨짐)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만한 비리나 부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동파된다는 기와는 멀쩡히 겨울을 넘겼고, 목재 갈라짐도 전통 목조건축에서는 항용 있을 수 있는 현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숭례문 복구와 관련한 공무원 혹은 관련 업체의 비리는 어느 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숭례문 복구에 관여한 한 인사는 "이번 경찰수사와 감사원 감사를 통해 숭례문은 역설적으로 사상 유례없이 복구가 잘된 문화재의 모델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물론 단청이 벗겨진 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목조 건축에서 단청은 사람으로 치면 얼굴 화장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결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숭례문에서는 애꿎은 한 사람만 자살로 몰고 간 셈이다. 반면 숭례문 밖에서는 문화재 분야의 고질이 드러나기도 했다. 예컨대 문화재 수리자격증 대여 문제는 소문대로 광범위하게 퍼진 것으로 드러나 문화재청에서 개선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개선책이 사태의 근본 해결책을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샀다.


나아가 광화문과 경복궁 소주방 복원 사업과 관련한 수사 결과 경찰은 이른바 '나무 바꿔치기'가 있었고, 공무원이나 공사 자문위원들의 뇌물 수수가 있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문화재청 공무원 6명은 수백만원에서 천만원대에 이르는 뇌물을 받았다고 하며, 문화재위원들이 포함된 자문위원단에서는 회의비를 이중으로 수령했다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 문화재위원과 공무원은 사직했다. 더불어 곧 무너질 것처럼 요란했던 석굴암과 팔만대장경판은 멀쩡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반적으로 보아 다른 무엇보다 총체적 문화재 부실의 보기로 거론된 숭례문 복구사업은 단청 훼손 외에는 이렇다 할 흠결이 없으며, 다른 분야에서는 고질적인 병폐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요란했던 것만큼 총체적으로 썩은 것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인사이트 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