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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어려워 군의관 아닌 '현역병'으로 입대한 이국종 교수가 해군서 배운 '원칙과 소신'

4년간 쌓아온 학업이 심해에 처박힐지도 모른다는 현실이 때때로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어린 시절 이국종 교수의 집안은 어려웠다.


참전 용사인 그의 아버지는 마땅히 존경받았어야 할 인물임에도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고전했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이 교수가 본과 2학년을 마친 뒤 '군의관'이 아닌 '현역병'으로 입대를 결심했던 이유다.


그 결정 이후 이 교수를 수식하는 단어는 '의대생'에서 '해군 갑판 수병'으로 바뀌었다.


세계 2차대전부터 사용하던 낡은 구축함이었던 경기함에서 복무한 이 교수는 매일 고치고, 닦고, 기름 쳤다.


사실상 폐선해야 하는 수준의 경기함이 이 교수를 비롯한 동료들의 목숨을 지켜줄 유일한 보호막이었기 때문이다.


인사이트뉴스1


그럼에도 그의 선임들은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배를 띄워야 한다"며 "그것이 이순신 제독 때부터 내려오는 해군의 전통"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교수 역시 이처럼 간단하고도 명료한 현실 앞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근무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4년간 쌓아온 학업이 심해에 처박힐지도 모른다는 현실이 때때로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 이 교수는 전출가는 한 상사의 배웅을 맡아 나섰다.


평생 해군 부사관으로 살아온 그는 현장의 문제와 개선점을 사령부에 인식시키기 위해 지상으로 왔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현장의 문제점은 '예산'에 발목 잡혀 개선되지 않았다. 정치적 결정에 좌절감을 느낀 그는 현장으로 돌아가는 터였다.


잔치국수를 나눠 먹고 헤어지던 길, 그가 이 교수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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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뱃사람이다. 하는 데까지 해보다가 안 되면 다시 배 타면 되지"


"의대 공부는 꼭 마쳐라, 난 뱃놈이라 그런지 육지에서 복잡한 정치는 못 하겠다. 너는 제대하면 하던 일을 꼭 마무리해라"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안 될 경우를 걱정하지 않고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간단하고도 확실한 신념이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면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면 그뿐이다. 나쁜 보직을 감수할 자세가 돼 있다면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다.


원칙에서 벗어나게 될 상황에 밀려 해임되면 그만하는 것이 낫다.


단순하지만, 일명 '사회생활'이라는 미명 하에 온갖 부조리가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서 지켜 나가기는 쉽지 않은 의지였다.


인사이트뉴스1


이 상사의 마지막 말은 이 교수의 머릿속에 깊고 짙게 남았다. 그가 전역 후 어려운 상황에서 의과대학 공부를 끝까지 마친 것도, "안 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가면서도 중증외상센터를 포기하지 않은 것도 이때 배운 '정의(正義)' 때문일 것이다.


이 교수는 자신의 책 '골든아워'에서 "(해군 복무 시절 배운) 단순한 논리가 인생의 방향타가 됐다"고 회고하고 있다.


2019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원칙과 신념' 혹은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묵인되고 용인된다.


소신을 지키는 사람은 '외골수'나 '부적응자' 등의 말로 포장당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 '외골수' 들은 정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튀어나온 못일 뿐일까.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면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면 그뿐이다"


이국종 교수와 해군이 가진 가장 단순한 논리를 어쩌면 우리는 잊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