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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제에 맞서 투쟁한 '여성' 독립 운동가 5인

일제 탄압에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격렬한 투쟁을 펼친 여성 독립 운동가를 소개하겠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인사이트] 변세영 기자 = 2019년 3월 1일은 3.1운동이 거행된 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인 이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독립운동 투사들에 대한 존경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커지는 모양새다.


흔히 '독립운동' 투사를 떠올릴 때 남성 운동가들을 많이 떠올리지만, 이들 못지않게 일제에 항거한 여성 독립운동가도 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 5명을 소개하겠다.


남자현 의사


인사이트EBS '다큐프라임 - 또 하나의 독립운동'


남자현 여사는 을미의병 때 사망한 남편을 계기로 일제에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는다.


독립군을 돌보는 역할뿐만 아니라 스스로 권총을 들기를 마다치 않으며 일제에 항거했다.


특히 61세의 나이로 만주국 전권대사의 암살까지 계획하며 열정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암살 시도가 적발돼 모진 고문으로 순국했다.


순국 당시 그는 재산을 모두 독립 축하금으로 헌납했다.  당시는 일제 압박이 가장 극에 달했던 시기였지만 그는 곧 맞이할 광복을 확신하며 눈을 감았다.


안경신 의사


인사이트국가보훈처


1920년 8월 3일 밤, 평양 시내를 뒤흔든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당시 식민통치 기관인 평남도청 평남 경찰부에서 폭탄이 터져져 청사를 지키던 일본 경찰 2명이 즉사했다.


해당 거사는 대한 광복군 총영소속 청년들에 의해 진행됐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도 포함돼 있었다.


바로 안경신 의사다. 당시 그는 33살의 작고 가녀린 체구에 임신 5개월인 상태로 목숨을 걸고 뜻을 함께했다.


정정화 선생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임시정부 어머니, 안주인이라고도 불리는 정정화 선생이다.


그는 독립운동의 자금을 모으고 운반하기 위해 '밀사'로 맹활약했다.


상하이 망명 이후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6번이나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 잠입할 만큼 목숨 걸고 운동을 펼쳤다.


그는 임시정부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부상을 돌보며 내조까지 펼쳤다. 또한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총회를 통해 여성과 아이들의 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윤희순 의사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항일 의병 지도자 윤희순 의사다.


188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단발령 반발한 을미의병 때부터 의병 활동을 실시했다.


당시 그의 시아버지는 춘천지역 의병이었는데, 시아버지에게 "남녀가 유별해도 나라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며 의병 활동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8편의 의병가를 지어 의병들의 사기를 북돋울 만큼 의병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김마리아 선생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여성인권과 독립 계몽운동에 힘쓴 김마리아 선생이다.


그는 2.8 독립선언과 3.1운동을 거치며 남대문역 앞에서 서울시내 만세 시위 배후로 지목돼 일본 형사에게 체포됐다.


옥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초를 받았음에도 석방 후 독립운동 계속할 만큼 그 의지가 대단했다.


안창호 선생은 "김마리아 같은 인물이 10명만 있었다면 대한은 이미 독립됐을 것이다"라는 말을 건넬 만큼 그의 기상을 높이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