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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혐오·차별'이란 이름 앞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

듣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을 불편한 말.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인사이트창비


[인사이트] 이하영 기자 = 불편한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머뭇거리게 한다.


다른 위치, 다른 마음, 다른 상황을 가진 사람들이 기존의 것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낮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변화를 반길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지위가 보다 상승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위 상류층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들릴 수 있다.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 사람들에게 그들은 자신이 소유한 자본을 나눠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사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貧益貧)은 격화되고 혐오의 정서는 깊어진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Twitter 'Hillary Clinton'


레베카 솔닛의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는 전 세계에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방위적 차별과 혐오에 관해 다룬 책이다.


저자는 성폭력과 2016년 미국 대선으로 혐오 이야기의 운을 뗀다. 민주당 힐러리와 공화당 트럼프의 대결은 이념과 정책을 넘어서 성별 대결 양상을 띄기도 했다.


솔닛은 힐러리가 선거에서 진 가장 큰 이유를 백인 남성들에게 돌린다.


백인 남성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수많은 이권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동시에 그들은 유색인종이나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여성들을 위한 정책으로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뿌리 깊은 여성차별이나 인종 차별을 제외하고도 이 책에서 새롭게 등장한 혐오 사건들이 광범위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책 속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경찰에 죽임 당한 라틴계 청년,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의 맹공으로 격화하는 기후변화에 맨몸으로 내몰린 사람들, 선거구 변화로 발언권을 잃은 시민 등이 등장한다.


아무 상관없는 것 같지만 이들은 모두 차별, 혐오의 희생양이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뉴스1


솔닛은 환경, 반핵, 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하는 현장운동가인 만큼 혐오의 문제에 우리가 지나쳐왔던 많은 문제들을 꼬집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내용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경찰에 죽임당한 라틴계 청년은 알레한드로 니에또다. 그는 공인 보안 요원으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던 침착한 마음을 가진 28살 청년이었다.


그러나 니에또는 자신이 일할 때 사용하는 테이저를 차고 주변 갱단이 많이 입는 붉은 재킷을 입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위험분자'로 인식됐다.


니에또가 사망한 날은 그에게 불운에 불운이 겹친 날이었다. 


과자를 먹으며 동네 공원을 지나가던 니에또는 군침 흘리는 한 마리의 개에게 공격당한다.  


개의 주인인 남성은 어처구니없게도 때마침 지나가던 여성의 뒷태에 넋을 놓고 있다 개를 관리하지 못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madhyamam


또한 니에또가 개를 쫓으려 했던 팔을 휘젓는 등의 방어 행동은 주변에서 조깅하던 또 다른 백인 남성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히스패닉'으로 파악돼 그는 911에 신고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미국 경찰은 그에게 5분 만에 59발의 총을 쐈다. 그는 얼굴을 비롯해 온몸에 총을 맞고 죽음에 이르렀다.


모든 증거는 경찰의 과잉진압을 가리켰으나 그중 누구도 청년의 비참한 죽음에 책임지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이 외에도 해당 사건이 일어난 캘리포니아 같은 신흥 도시에는 집세가 올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나 노숙인으로 전락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솔닛은 말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gettyimagesbank


2016년 세계경제포럼을 앞두고 그해 1월 공개된 '1%를 위한 경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5년 동안 62명의 부는 44%가 늘었으나 반대로 하위 절반 인류의 재산은 41%가 줄었다. 


놀랍게도 세상은 점점 가진 자가 더 가지는 시스템으로 번져간다. 


시간이 지나면 서민들에게 좀 더 유리한 경제 체제가 만들어지고 차별이 없는 사회가 올까.   


저자는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하더라도 이런 세상은 당장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뉴스1


다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지치지 않고, 현혹되지 않고 계속 말하는 것이라고 솔닛은 전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이것이 '이야기들의 싸움'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련의 일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야기를 짓고, 기억하고, 다시 들려주고 기념하는 것'을 이 일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이 책의 일을 '남의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날로 치솟는 집값으로 휘청거리다 거리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노인이나 어린아이 등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혐오나 폭력의 대상이 되는 묻지마 범죄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MBC '뉴스데스크'


내가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불편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야기들의 싸움은 마치 작은 물방울들이 수없이 떨어져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다. 


우리가 말이나 행동으로 무수한 물방울들을 만들지 않는다면 바위는 언제까지나 끄떡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물방울에 불과할지라도 꾸준히, 지치지 않고 바위를 공격한다면 바위는 시나브로 깎여나가게 되어있다. 


'나 하나 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 만이라도'라는 마음이 될 때 우리 사회는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