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석주 의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날입니다"
나석주의 대범한 행동은 일본 경찰에게 큰 충격을 줬고, 우리 독립 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남았다.
[인사이트] 배다현 기자 = 91년 전 오늘은 나석주(1892~1926) 의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생을 마감한 날이다.
1892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나석주는 125년간 대대로 농사짓던 땅을 일본이 세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빼앗겼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제가 한국 경제를 독점하기 위해 설립한 국책 회사로 토지조사사업 등을 통해 조선인들의 땅을 빼앗는데 앞장섰다.
회사는 조선으로부터 출자받은 토지를 매입해 조선에 이주한 일본인이나 친일파에게 넘겨주는 일을 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집안 땅을 모두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한 나석주는 백범 김구가 세운 양산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독립 투사가 됐다.
그는 황해도 일대 부호들의 집을 털어 거액의 독립 운동 자금을 마련해 상해 임시 정부로 송금하는 일을 했다.
이후 평산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해 경찰과 면장을 죽이고 중국으로 피신했다.
중국으로 가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 경호원이 된 그는 과거 교장 선생님이었던 백범 김구의 경호를 맡았다.
그리고 1926년, 약산 김원봉이 창설한 의열단에 가입해 거사를 계획했다.
12월 28일 중국인으로 변장한 채 권총과 폭탄을 들고 한국으로 잠입한 그는 먼저 식산은행으로 가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폭탄은 불발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동양척식주식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신문지에 숨겨 온 권총으로 1층에서 일본인을 사살한 후 2층 사무실을 돌며 총알을 쏟아내고 폭탄을 투척했다.
그러나 이 폭탄 역시 터지지 않았고, 이후 나석주는 출동한 경찰과 백주대낮 시내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던 곳은 현재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주변, 현재도 번화가인 명동 한복판이다.
이 곳에서 경찰을 피해 도망치던 나석주는 자신의 총으로 가슴에 세 발을 쏴 서른넷의 생을 마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은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마라!"였다.
나석주의 죽음은 17일 동안 당국이 쉬쉬했으나 이듬해 1월 동아일보의 호외로 전말이 알려졌다.
당시 그의 대범한 행동은 일본 경찰에게 큰 충격을 줬고, 우리 독립 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남았다.
배다현 기자 dahyeo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