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4일(수)

쿠팡 세무조사에 미국서 '불만'의 목소리... 한미 통상 갈등의 '새 변수'로 떠올랐다

국세청이 쿠팡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이 조치가 한미 통상 마찰을 자극하는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라는 통상적인 행정 조치가, 미국 정부와 의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디지털 플랫폼 규제 논쟁과 맞물리며 외교·통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와 의회가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이른바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을 "차별적 규제"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쿠팡에 대한 제재가 미국 기업을 겨냥한 간접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쿠팡 본사 / 뉴스1


실제로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18일 예정됐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회의를 취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폴리티코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회의 취소 배경으로 한국이 미국 행정부가 '차별적'이라고 판단하는 디지털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지목했습니다.


한 소식통은 "미국 행정부는 한국이 디지털 분야를 포함한 주요 현안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USTR은 이미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에 대해 보복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으며, "EU식 전략을 따르는 다른 국가들에도 유사한 접근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해왔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 문제를 정치·외교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성향과 맞닿아 있습니다.


X 'The White House'


미국 의회의 압박도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산하 소위원회는 지난 17일 "반미 반독점: 외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청문회를 열고, 한국의 플랫폼 규제를 직접 문제 삼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실명으로 거론되며 정치적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책컨설팅업체 컴피티어의 생커 싱험 대표는 "한국의 온라인플랫폼시장법이 미국 디지털 플랫폼에 비대칭적인 부담을 지우는 반면, 한국 재벌 기업에는 상대적으로 덜 엄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온플법이 '공정 경쟁 규제'가 아닌 '비관세 장벽'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온플법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 다시 입법 논의가 가속화됐습니다. 해당 법안은 시장지배적 플랫폼을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규제하는 내용과 함께, 입점업체 보호 및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등을 포괄합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 산업통상자원부


그러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이를 자국 기업을 겨냥한 사전 규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권위있는 온라인 매체 로파이어(Lawfare)에 따르면, 구글·애플·메타 등 미국 빅테크는 한국의 플랫폼 규제가 차별적이라며 미 상공회의소, 업계 로비 단체, 의회, USTR를 상대로 반대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역시 "이 법안의 영향권에 가장 크게 들어올 기업으로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그리고 쿠팡을 지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쿠팡에 대한 세무조사와 온플법 논의가 미국과의 통상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입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 정부 관계자는 "USTR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미 FTA 공동위를 연기하기로 한 결정과 최근 쿠팡 정보 유출 건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정치적 반발이 제재 수위를 낮추는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옵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 / 뉴스1


반대로 세무조사 결과에 따라 국면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만약 탈세 혐의가 명백하게 확인될 경우, 공정한 경쟁과 세금 준수를 중시하는 미국 행정부의 기조상, 이번 사안을 통상 갈등으로 확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쿠팡을 둘러싼 이번 사안이 한미 관계의 뇌관이 될지 여부는 세무조사의 결론, 온플법 입법 속도,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수위라는 세 가지 변수에 달려 있습니다.


국내 정책 판단이 국제 통상 질서와 어떻게 충돌하거나 조정될지, 그 시험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