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앱으로 계좌를 만들거나 대출을 신청할 때면 비슷한 알림 문구가 뜹니다. 1원이 입금됐으니, 입금자명 뒤 숫자를 입력해 달라는 안내입니다.
이 일상적인 장면의 출발점이 10년 전 한 핀테크 스타트업의 특허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토스 앱을 막 키워가던 2016년, 이승건 대표는 비대면 계좌 개설 과정에서 소액을 보내고 입금자명에 인증 숫자를 심어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이른바 1원 인증 방식을 고안해 특허를 냈습니다. 이후 금융실명 관련 규제가 정비되고, 전 금융권이 비대면 계좌 개설 경쟁에 뛰어드는 과정에서 이 구조는 사실상 업계 공통 표준이 됐습니다.
해당 특허의 존재는 2025년 2월 26일 토스 1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으로 공식 언급됐습니다. 이 대표는 당시, 토스가 1원 인증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어느 금융회사나 핀테크가 이 방식을 쓰더라도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사용을 막은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토스가 만든 기술이 토스만의 무기가 아니라 금융 산업 전체의 표준으로 자리잡도록 일부러 개입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발언의 의미는 그로부터 아홉 달이 지난 지금, 더 선명하게 읽힙니다. 토스는 2024년이 돼서야 비로소 연간 기준 첫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수년 동안 공격적인 투자와 인력 확충,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며 적자를 이어왔습니다.
이른바 '약육강식(弱肉强食)'이 당연시되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적자를 줄일 수 있는 수익원이라면 무엇이든 찾아야 하는 압박은 예외 없이 존재했습니다. 1원 인증 특허는 그런 의미에서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카드였습니다. 비대면 계좌 개설이 금융사 경쟁력의 핵심이던 시기, 토스가 특허를 내세워 로열티를 요구했다면 상당한 규모의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토스처럼 결제·은행·증권·보험을 동시에 키워야 하는 플랫폼 입장에서는 매출을 보강할 유혹이 더 컸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토스는 이 특허를 끝내 상업적 무기로 쓰지 않았습니다. 은행 앱이든 카드사 앱이든, 경쟁 플랫폼이든 1원 인증과 유사한 방식이 널리 쓰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스가 권리를 포기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도적으로 행사하지 않으면서 기술을 공용 인프라에 가깝게 풀어둔 셈입니다.
이 선택이 체감되는 지점은 소비자에게 더 가깝습니다. 새로운 금융 앱을 설치할 때마다 각기 다른 인증 절차를 익힐 필요가 없습니다. 1원을 보내고 입금자명을 확인하는 구조만 이해하면, 대부분의 비대면 계좌 개설과 대출 신청을 비슷한 방식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지방이나 고령층, 창구 방문이 쉽지 않은 직장인처럼 비대면 채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특히 큰 변화였습니다.
국가 전체로 봐도 효율성은 분명합니다. 1원 인증은 '표준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계좌 개설과 본인 인증에 있어 '공통 언어'가 생기면서 금융당국과 업계가 설계해야 할 보안 체계, 소비자 보호 장치도 일정 부분 표준화된 것입니다. 이는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 참여자의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토스의 특허는 생각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토스는 이제 흑자를 내는 회사가 됐고, 글로벌 상장 여부를 둘러싼 시장의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성장 단계가 바뀌면 기업이 자산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1원 인증 특허만큼은 수익보다 표준을 앞세운 초창기 선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에피소드는 토스라는 기업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승건 대표의 성향도 보여줍니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적자를 감수하면서 몸집을 키우고, 어느 시점이 되면 강력한 수익 모델을 앞세워 반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식이 반복됩니다. 그런 공식 속에서 토스의 1원 인증 특허는 조금 다른 궤적을 그렸습니다.
토스의 재무제표에는 한 번도 찍히지 않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비대면 금융의 바닥을 떠받친 조용한 자산이었습니다.
이 특허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 토스를 향해 미담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상식이 된 시대, 수익보다 업계와 국가 전체의 편익을 우선해 행사하지 않은 권리. 거친 시장 한복판에서 오래 참고 남겨둔 이 선택은, 핀테크 산업을 넘어 금융 전체를 통틀어도 드물게 눈에 띄는 한 송이 꽃처럼 평가받을 만한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