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금융권에 확산된 '포용 금융' 기조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일부 시중은행에서 저신용자의 대출 금리가 고신용자보다 더 낮게 책정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상환 능력이 높은 차주가 더 높은 금리를 내고, 연체 위험이 높은 차주는 더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 구조가 확인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24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주요 은행의 10월 '신용한도대출 금리 현황'에서 여러 구간에서 금리 역전이 관측됐습니다. KB국민은행은 신용점수 700~651점 구간의 금리를 약 5.40%로 책정했지만, 600점 이하 차주에게는 3.70%를 적용했습니다.
하나은행 역시 700~651점 구간 금리가 4.54%인 반면, 600점 이하 차주는 3.43% 수준이었습니다. 우리은행도 800점대 고신용자에겐 5%대 중후반 금리를 매기면서, 600점 이하 최저신용자에게는 4%대 초반 금리를 제시했습니다.
신용점수는 상환 능력과 의지, 연체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지표입니다. 일반적으로 점수가 낮을수록 위험이 높아 더 높은 금리가 매겨지는 것이 금융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 곳곳에서 금리가 역으로 뒤집힌 이유로는 정부의 취약계층 지원 요구가 가장 먼저 거론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서민 금융 부담 완화를 강조하며 은행권에 금리 인하·채무 조정·정책 대출 확대 등을 주문해 왔습니다.
특히 5대 금융지주가 향후 5년간 취약계층 금융지원을 위해 7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이후, 일부 정책성 대출 상품에서 저신용자 금리가 더 낮게 형성되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역차별' 논란이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신용관리를 꾸준히 해온 고신용자들이 오히려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상황에 대해 "성실히 갚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불만이 잇따랐습니다. 일부 커뮤니티에는 "이럴 거면 나도 연체하겠다"는 자조적인 글까지 올라오며 소비자 피로감이 적지 않음을 드러냈습니다.
금융당국도 난감한 분위기입니다. 시장 원칙만 따지면 금리 역전은 이례적이고 해석의 여지도 많지만, 대통령이 직접 '금융계급제'라는 표현까지 쓰며 취약계층 금리 인하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기존 관행만을 근거로 손을 놓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난한 이에게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며 금융권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존 시스템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시장이 흔들릴 만큼 큰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리 역전이 관찰되는 상품 상당수가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예산이 포함된 정책성 대출이며, 실제 취급 규모도 '소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700점 이하 저신용자가 이용하는 대출 상품은 은행 자체 상품이 아닌 '정부 정책 지원' 상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출 총량 기준으로 봐도 비중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정책 방향과 금융의 기본 원칙 사이에서 해묵은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포용 금융이 서민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로 이어질지, 아니면 성실한 금융 소비자에게 상대적 박탈감만 키우는 결과가 될지는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향후 조정 방향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