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 교수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 자살 예방한다는 근거 없다"

최근 여러 극단적 선택 사건이 발생하면서 보도 윤리에 따른 극단적선택이란 용어가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재조명되고 있다.

입력 2023-04-20 10:36:19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최근 강남에서 한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극단적 선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가 자살을 예방한다는 근거가 없고 오히려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는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해 7월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자살 대신 다른 완곡한 용어를 사용하는 게 자살을 줄이거나 예방한다는 근거가 없다"고 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그러면서 "미국, 독일 등도 중립적인 용어인 자살을 자살로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또 극단적 선택이란 완곡한 표현이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표현은) 사망한 사람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에게도 낙인이 된다"며 "유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유족들에게 또 다른 죄책감을 주고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은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마련한 '자살보도 윤리강령'에 따른 것이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강령에는 기사 제목에 자살을 언급하지 말라는 권고가 담겨 있는데, 이에 따라 국내 대다수 언론은 가급적 자살 보다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나 교수는 "(자살) 보도 원칙 중 또 하나 중요한 건, 자살을 마치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하나의 가능성처럼 보도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에 자살이 마치 힘든 상황에서 선택지의 하나라는 것을 이미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자살을 예방하는 것도 아니고, 또 자살이라는 명백히 존재하는 공중보건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그러면서 "오히려 고인과 유족들에게 더 큰 짐을 부여한다면 이 용어를 우리가 왜 사용하는 걸까 한번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어찌 보면 문제를 직면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자신도 우울증을 겪었다고 고백한 나 교수는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지금 내 마음이 어떻지?'라고 꼭 물어봐 줘야 한다"며 스스로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서 모든 정신건강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또한 "본인이 힘든 걸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건 약한 게 아니라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정신 건강을 신경 쓰고 관리받는 것도 헬스장 다니는 것처럼 자기 관리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변 친구나 지인이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걸 알게 되면 자기 관리 잘하는 분이라고 좋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