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천 기자 = 친구 아내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30대 남성이 결국 실형을 받았다. 친구 부부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였다.
지난 7일 대전고등법원 제8형사부(재판장 전지원 부장판사)는 성폭행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모(38) 씨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원심 무죄를 파기하고 징역 4년 6개월에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2017년 4월 친구 A씨가 해외 출장을 간 사이 친구의 아내 B씨를 불러 A씨와 그 자녀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박씨의 성폭행 혐의를 무죄로 봤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A씨 부부는 무죄 판결이 나오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난해 3월 3일 전북 무주 한 야영장에서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시 부부가 작성한 유서에는 "친구 아내를 탐하려고 모사를 꾸민 당신의 비열하고 추악함, 죽어서라도 끝까지 복수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A씨 부부의 죽음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박씨와 성관계를 가진 뒤 10여 분가량 B씨와 이혼과 관련해 대화를 나눈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르게 봤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내린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이 부족했다"며 "피해자의 진술이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전고등법원은 대법원으로부터 사건을 돌려받고 파기 환송심을 열었다. 검찰은 재판에서 박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박씨는 최후 변론에서 "억울하고 답답해 죽고 싶어도 가족을 생각해 버텨왔다"면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전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원심을 뒤집고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가 남편이 해외에서 돌아올 때까지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텔에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공소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으므로 엄히 처벌할 수밖에 없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