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얼굴을 알 수 없거나 지문 채취가 되지 않으면 용의자를 특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만약 용의자가 신발 발자국까지 숨겼다면 사건의 실마리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는 CCTV 영상이 있고, 그 안에 용의자의 걸음걸이가 담겨 있다면 '특정'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얼굴 사진, 지문, 신발자국이 아니면 수사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법보행' 수사 기법이 새로운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어서다.
10일 중앙일보는 경찰청과 협력해 법보행 수사기법을 직접 실험하고, 그 분석 과정을 취재해 보도했다.
법보행 수사기법은 CCTV 속 용의자의 걸음걸이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얼굴이나 지문을 알 수 없는 경우 용의자의 보행 특성을 분석해 유사성이 높은 동일 인물을 추출하는 수사 기법이다.
취재에 참여한 해당 매체 기자는 직접 가상 범죄 상황을 꾸미고 이를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다음 이 영상을 분당서울대병원 동작 분석실로 가져갔다.
분석실에서는 기자의 걸음걸이 3D 입체 모양으로 촬영해 걸음걸이를 측면, 정면, 윗면의 시점으로 각각 나눠 관찰하고, 보폭과 근육·관절의 움직임 등을 세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가상 범죄 상황이 찍힌 영상 속 걸음걸이와 실제 기자의 걸음걸이가 90% 이상 일치했다.
이는 유전자 정보나 지문처럼 그 자체로 개인을 식별하는 증거가 부족한 경우 법보행 분석이 용의자 특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법보행 수사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때는 지난 2013년이다.
그해 5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자택에 누군가가 화염병을 투척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CCTV에는 범인의 얼굴 대신 걸음걸이만 포착됐다.
경찰은 영국의 법보행 전문가 헤이든 칼리 박사를 초청해 범인의 걸음걸이를 분석했고, 이를 토대로 용의자를 확인해 구속 영장도 발부받았다.
이후 경찰에서는 법보행이 향후 수사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지난 2014년 법보행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 협의체는 14년부터 올해까지 총 140여 건의 보행을 분석해 범인 검거를 도왔다.
법보행 전문가협의체 의원으로 있는 이상형 동국대일산병원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국에 설치된 CCTV 수백만 대가 모두 범인의 걸음을 포착하는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