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오늘(30일)로부터 91년 전인 1928년 11월 30일. 평안북도 희천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일제의 침략 속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 아이는 14살이 되던 해 한 아주머니로부터 기차를 타고 가면 기술도 가르쳐주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고향에 보낼 돈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소녀는 아무 의심 없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이 소녀가 도착한 곳은 만주 하얼빈이었다. 일제가 일으킨 만주 사변으로 인해 '전쟁'이 한창이던 곳이었다.
어린 소녀가 '속았다'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녀는 좁은 방 안에 갇힌 채 일본군에게 강간과 폭행을 셀 수 없이 당했다.
이후 일본군은 소녀의 몸이 성치 않자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을 뿐, 건강을 되찾자 이번엔 또 다른 기차를 태웠다.
이렇게 중국 스자좡으로 보내진 소녀는 그때부터 3~4년간 더욱 끔찍한 악몽을 견뎌야 했다.
하루에도 수십명씩 오는 일본군에 의해 망가질 데로 망가진 몸. 소녀의 아래에 깔린 이불은 피로 벌겋게 젖어 들었다.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해도 일본군은 개의치 않았다. 되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일본도가 든 칼집으로 머리를 내려쳤다.
머리에서 흐른 피는 소녀의 온몸을 적셨다.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틴 소녀.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소녀는 그로부터 수 십년이 지나고도 "그렇게 더럽혀진 몸으로 어떻게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있겠어요"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다.
모진 세월을 꿋꿋하게 견딘 길 할머니는 오늘(30일) 가장 행복한 91번째 생일을 맞았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 된 길 할머니의 생일 잔치 현장.
길 할머니는 수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세상에게 가장 밝은 미소를 보여줬다.
어릴 적부터 꿈꿨던 가수로써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길 할머니 앞에 '꽃길'만 펼쳐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