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비 기자 = 한때 친일파로 오해받았지만 누구보다 조국의 독립을 열망했던 조선의 마지막 왕자 이우.
그런 그의 이름이 여전히 전범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8일 MBC '신비한 이야기 서프라이즈'는 조선의 마지막 황족 이우 왕자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했다.
이우 왕자는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의 아들이다.
이우 왕자는 1922년 고작 11살의 나이로 일본에 끌려가 유년 학교에 입학하고, 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을 졸업했다.
왕세손, 공은 만 18세가 되면 육군, 해군 무관으로 임관해야 한다는 일본의 왕공가궤범 때문이었다.
육군사관학교는 물론 친일파 박영효의 손녀 박찬주와 결혼한 이우 왕자는 한때 일제의 앞잡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우 왕자는 누구보다 일본을 증오하던 사람이었다.
이우 왕자는 언제나 일본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일본에서도 일본어를 쓰지 않고 조선말을 쓰는 호방한 기질을 보였다.
또 그는 원래 일본 백작의 딸과 정략결혼이 내정돼 있었지만 끝까지 저항해 조선 여인과 결혼을 올렸다.
비밀리에 독립자금을 모으던 그는 왕자의 독립 계획을 눈치챈 일제에 의해 히로시마로 전출을 가게 된다.
비극은 여기서 벌어졌다. 이우 왕자가 히로시마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 원자폭탄을 떨어트린 것.
부임지로 출근하다가 피폭당한 조선의 마지막 황족 이우 왕자는 결국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눈을 감은 후에도 그는 끝까지 편안히 잠들지 못했다. 일본이 유족의 동의 없이 그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 것이다.
지난 2007년, 이우 왕자의 후손들은 그의 위패를 야스쿠니 신사에서 빼달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 측은 "사망 당시 이우 왕자는 '일본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지킨 신으로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며 후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이우 왕자의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 운현궁 가족 묘지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