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당신은 내 반쪽이 아니야. 그냥 내 전부야. 오롯이 나야. 사랑해 여보"
점점 굳어가는 근육으로 이제는 걷지도, 말하지도, 웃을 수도 없는 아내이지만 남편 춘수씨는 괜찮다. 아내를 볼 수 있어서.
지난 24일 방송된 EBS '메디컬다큐-7요일'에서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위해 헌신을 마다치 않는 남편의 순애보가 그려졌다.
인천 계양구의 한 반지하방, 남편 천춘수(56) 씨는 새벽 4시 40분에 눈을 뜬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아침을 맞이한 그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아내 송연분(54) 씨 곁이다. 아내는 2011년 운동 근육 신경세포가 점점 죽어 수년 내에 사망에 이르게 되는 루게릭병을 확진 받았다.
벌써 발병 8년 차를 맞은 지금, 남편은 직장도 그만두고 24시간 아내를 돌본다. 생계는 큰 아들이 이어가고 있다.
현재 아내는 혼자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다. 남아 있는 감각이라고는 '눈빛' 하나다.
남편은 세밀하게 흔들리는 아내의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지금 기분이 좋은지, 슬픈지, 불편한지 등을 이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춘수씨는 최근 몸이 더 바빠졌다. 이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 젊은 시절, 아내의 꿈은 베란다 있는 집에 사는 것이었다. 남편은 꾸준히 임대 아파트를 신청했고 5년 만에 당첨됐다.
그토록 원했던 햇빛 가득 들어오는 아파트에서 아내를 돌볼 생각을 하니 남편 춘수씨의 마음에도 꽃이 핀다.
비록 아내는 누워있지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픈 남편은 매일 이사갈 집을 오가며 집 꾸미기에 바쁘다.
특히 춘수씨가 신경쓰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침대'다. 항상 누워있는 아내에게 욕창이 생기는 걸 보고 춘수씨는 오직 아내만을 위한 특별 침대 제작에 나섰다.
누운 상태에서 배변과 샤워가 가능하도록 춘수씨가 고안해낸 것이다. 전문가도 아닌 춘수씨는 일일이 비닐 장판을 뜯고 오리고 이어붙여 배수시설까지 완벽한 침대를 만들었다.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10분 간격으로 아내의 가래를 빼주고 새벽에도 잠들지 못한 채 아내 곁을 지켜야 하는 남편.
몸이 고되고 힘들지만 절대 남편은 아내 앞에서 울지 않는다. 항상 침착한 모습을 보인다.
이유는 단 하나, 아내가 슬퍼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것은 '눈빛' 뿐인 아내는 춘수씨가 눈물을 흘리면 즉각 반응을 보인다.
숨이 가빠지고 혈압이 오른다. 자칫 잘못하면 위험한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무엇보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그 약속을 젊어서는 지키지 못했다. 병상에 누운 아내가 지금이라도 자신의 사랑을 알아준다면 그것만큼 바라는 게 없다는 남편 춘수씨다.
가끔 춘수씨는 과거 건강했던 아내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며 밤을 보낸다.
아내의 따뜻한 미소가 춘수씨의 마음을 위로한다. 갑자기 찾아온 시련은 분명 아내에게도 춘수씨에게도 힘든 순간이었다.
하지만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다"라고 크게 외쳤던 30년 전의 맹세를 떠올리며 오늘도 춘수씨는 아내 곁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