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가만히 서 있기도 버거운 폭염. 그러나 오늘도 아버지는 20년 전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25일 인사이트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실종된 딸을 찾으려 지금도 거리를 나서는 아버지 송길용 씨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전국의 한낮 최고기온은 최고 38도까지 올랐다. 평년보다도 4도에서 7도가량 높은 무더위 속 송씨는 충남에 위치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단지를 돌렸다고 했다. 송씨의 집은 경기도 평택에 있다.
많은 이가 보지도 않고 전단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송씨는 "쓰레기통을 뒤져서 전단을 찾는다. 주운 전단은 다리미로 깨끗이 다려놓는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이토록 애타게 찾는 딸 혜희 양은 경기 평택 성탄여고에 2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지난 1999년 2월 13일 실종됐다. 혜희 양은 이날 밤 10시께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설날을 사흘 앞둔 날이었다.
그 날은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딸이 반 배정을 받는 날이었고 학교는 오전 일찍 마쳤다.
학교에 다녀온 혜희 양은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잠시 놀다가 고3인 만큼 공부를 해야겠다며 다시 집을 나섰다.
당시 학교에서는 야간학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야간학습을 하러 학교에 간 딸은 공부가 끝난 밤 10시경 버스를 타고 집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딸을 찾아 송씨 부부는 전국 팔도에서 밟지 않은 땅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다.
딸을 찾느라 생업을 포기한 탓에 끼니를 거를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지만 피까지 팔아가며 전단과 현수막을 만들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딸은 찾을 수 없었다.
심장병에 걸려 건강만 나빠진 아내는 결국 혜희 양의 사진이 담긴 전단을 품에 안고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럼에도 송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금도 품 안 가득 딸의 전단을 들고 혼자 집을 나선다.
일주일에 한 번은 우리나라 수도 서울로, 3~4일 마다는 전국 각지 고속도로 휴게소로 향한다. 열흘에 한 번씩은 대전·광주·대구 등 다른 주요 도시를 헤맨다.
하루에 2~3천 장씩, 대충 어림잡아 봐도 1999년부터 지금까지 4~5천만 장 정도의 전단을 돌렸다는 송씨다. 서울 명동에서 저 땅끝마을 해남까지, 송씨의 발길이 닿은 곳마다 현수막도 걸렸다.
"현수막이 지저분해지면 그게 그렇게 보기 싫다"는 송씨는 꼬박꼬박 오래된 현수막을 새로 교체하는 작업도 잊지 않고 있다.
전화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송씨는 "오늘 밤도 서울에 현수막을 걸러 나가야 한다"면서 "마음으로는 더 많이 하고 싶은데, 경제적이나 신체적으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따름이었다.
송씨는 몇 시간에 걸쳐 밤새 현수막을 건다고 했다. 낮에는 다른 시민들에 폐를 끼칠까 일부러 인적 없는 새벽 시간대에 현수막을 건다는 설명이었다.
그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더위에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송씨는 "집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송씨는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정부에서 한 달에 쌀 한 포대와 50만원을 지원받는다. 이 50만원으로 전단과 현수막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지만 송씨는 "20년이 지난 지금 현수막이나 전단에 있는 딸의 얼굴만으로는 찾기 힘들 걸 나도 안다"고 담담히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1999년 당시 내 딸을 지나가면서라도 봤던 이가 틀림없이 있지 않을까"라면서 이어 "그걸 기억해주시는 분이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고 소망했다.
"딸을 만날 수만 있다면 내 심장을 뜯어 팔기라도 하고 싶다"는 송씨는 혜희 양이 사라진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딸 또래인 학생들을 볼 때마다 매번 눈물이 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소원대로 죽기 전 딸을 만날 수 있을까.
송혜희 양은 지난 1999년 2월 13일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에서 실종됐다. 당시 혜희 양은 흰색 블라우스에 빨간색 조끼, 파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키 163cm에 둥근 얼굴형, 까무잡잡한 피부가 특징이다.
혜희 양으로 추정되는 이를 목격했거나 과거에 목격한 적이 있다면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 또는 '실종아동전문기관'으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