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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재난에 맞서는 과학'

이 책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정치와 자본으로 환원되지 않는 과학의 고유한 특성들을 환경사회학과 과학기술학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민음사


[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1994년 출시된 가습기살균제는 가정의 청결과 건강을 관리하는 제품으로 1000만 개 가까이 판매되었다. 2011년 원인불명의 폐 질환 사례가 수집되면서 이 획기적인 제품은 전대미문의 환경재난을 부른 주범으로 지목된다. 


2023년 10월 말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7877명 중 확인된 사망자 1835명. 도대체 어떻게 이토록 위험한 제품이 팔릴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다치고 병들고 죽고 나서야 만들어지는 지식이 있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호는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도, 사망자가 발생한 후로도 계속해 울렸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골든 타임은 거듭 유예되었다. 역학과 독성학 전문가의 의견이 갈렸으며, '가장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절차는 계속해서 지연되었다. 


청부과학 논란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과학의 장면이다. 기업은 거액의 연구비로 연구 결과를 조작하려 나섰고, 이 연구를 맡은 전문가는 자본과 결탁한 청부과학자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이 답답하고 익숙한 경과가 사건의 전부는 아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과정에는 피해자의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듣고, 책임 있게 사건 해결에 나선 '다수의 참여하는 전문가'가 존재했다. 전대미문의 참사에 대응해 온 가장 강력한 연대체는 피해자와 시민단체, 전문가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완벽하지 않고 오래 걸렸지만,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오늘의 과학은 절대적인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재난을 둘러싼 책임 논란과 극한의 대립은 때때로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정치와 자본으로 환원되지 않는 과학의 고유한 특성들을 환경사회학과 과학기술학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한국 사회가 느리고 단단하게 성숙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논쟁에서도 보듯, 앞으로도 반복될 재난에 맞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갈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