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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금수저' 등극한 자수성가형 한국 부자 3인

무일푼에서 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된 자수성가형 인물을 소개한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강지원 기자 = 흔히 집안의 재력이 얼마나 여유로운지 또는 가난한지를 두고 '흙수저', '금수저'로 나눠 부른다.


특히 소득 집단 간의 '부의 대물림'이 이어지면서 부모 소득 수준의 영향력이 부모 대에서 끊기지 않고 있다.


소득 격차는 예전보다 좁혀졌다고 하지만, 단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무일푼으로 시작해 스스로 엄청난 자산을 가진 부자로 성장한 인물도 있으니 희망을 잃기에는 이르다.


한국의 수 많은 부자들 중 가난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스스로 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된 자수성가형 인물들을 소개한다.


 1.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인사이트서정진 회장 / 셀트리온


바이오 의약품 제조업체 셀트리온을 창업한 서정진 회장의 과거는 '흙수저'의 대표적인 예다.


그는 유년 시절 당시 산림공무원으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둔 아버지와 함께 서울 구파발역 인근인 은평구 진관외동 기자촌으로 상경했다.


이후 작은 연탄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와 생계를 유지했다. 본인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에 택시 운전을 했다.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에서 공부한 서 회장은 졸업 이후 삼성전기에 들어갔다. 시간이 흘러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하여 대우자동차를 컨설팅하다 능력을 인정받고 대우자동차로 1991년 본격 이직하게 됐다.


그러나 대우자동차가 망하면서 실직하게 됐고 1999년 오피스텔을 얻어 실직한 동료들과 함께 창업을 구성했다. 당시 바이오기업인 '넥솔'을 창업했다. 


이후 꾸준히 바이오산업의 동향을 배우며 바쁘게 지낸 끝에 지난 2002년 지금의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서 회장은 미국 벡스젠사와 제휴를 맺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2004년에는 인천에 제1공장까지 세웠다.


사업은 꾸준히 번창했고 2009년 이후 바이오 벤처기업 선두 주자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는 한국 2위 부자로 우뚝 서며 2020년 기준 총자산 규모 93억 달러(한화 약 11조 70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 넷마블 방준혁 의장


인사이트방준혁 의장 / 뉴스1


게임 회사 넷마블을 창업한 방준혁 의장 역시 자수성가형 부자다.


그는 서울 변두리 구로 공단 판자촌에서 태어났다. 집 형편이 찢어지게 가난한 탓에 초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때에는 학업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자퇴를 선택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의 어릴 적 목표는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해서 40대 이전에 은퇴해 여생을 즐기는 것'이었다고 알려졌다.


이후 평범하게 중소기업에 다니던 방 의장은 31살 나이에 인터넷과 영화 관련 사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실패했다.


포기하지 않고 1년 뒤에는 위성 인터넷 사업에 도전했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사채업자들이 몰렸고 몇 없었던 직원들의 월급도 제때 주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1억 원의 자본금을 가지고 8명의 직장 동료와 세 번째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넷마블로 성장했다.


방 의장은 밤낮 가리지 않고 게임 개발에 열중했고 식사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매끼 짜장면만 먹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국내 1위 게임 회사로 키워냈고 분기당 영업이익이 100억 원에 이르게 됐다. 지난 2004년에는 CJ그룹에 지분을 매각하며 800억 대의 주식 부자가 됐다.


현재 방준혁 의장의 주식 재산은 지난해 기준 1조 63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다.


3. 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


인사이트박현주 회장 / 뉴스1


증권사, 자산운용사, 보험사, 캐피털 회사로 구성된 미래에셋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현주 회장 역시 스스로 엄청난 자산을 모았다.


박 회장은 중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도 낮은 성적으로 졸업해 재수 끝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생활비 역시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 마련해야 했다.


이때 어머니는 시중 은행보다 높은 금리로 박 회장에게 돈을 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학교 재학 중 '자본시장 발전 없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증권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영업부에 입사한 박 회장은 엄청난 재능을 발휘하며 3개월 만에 대리로 승진하게 된다.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으로 이직한 그는 32세 나이에 동원증권 서울 중앙지점 지점장까지 맡으며 '최연소 지점장' 타이틀을 얻게 된다.


박 회장은 여러 회사로부터 고액 연봉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정중하게 사양하고 미래에셋벤처캐피탈 미래에셋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계속해서 사업체 몸집을 키워 나간 그는 지난 2011년 기준 2조 463억 원의 엄청난 개인 재산을 얻게 됐다.


당시 한국 부자 랭킹 6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세우고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증시에 상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