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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때 처음 만나 '23년' 연애한 첫사랑 남친과 결혼합니다"

한 남자와 유치원 때부터 23년을 연애한 여성이 프러포즈를 받은 후 그간의 연애사를 공개해 감동을 줬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한 사람과 몇 년을 연애하고 결혼하는 게 적당할까. 6개월? 1년? 그것도 아니면 5년?


과거 소셜데이팅 업체 정오의 데이트가 2030 미혼남녀 3만 53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성을 가장 오래 만났던 기간으로 남녀 모두 '1년 이상~3년 미만'을 꼽았다. (남자 34%, 여자 32%)


1년에서 3년 정도가 적당한 연애 기간이고, 이 기간이 지나면 결혼이나 이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란 소리다.


그런데 여기 무려 '23년'을 연애만 한 커플이 있다. 그 흔한 결혼 생각 한 번 하지 않고 말이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여성 A씨가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를 시작한 건 유치원 때부터였다. 상대는 짝꿍이 된 뒤 계속 손을 잡고 다닌 남자친구 B씨.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지금은 서른 살인 두 사람은 그때 이후로 중학교 때까지 늘 붙어 다녔고, 주변으로부터 "너네 사귀냐?"란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때는 둘다 필사적으로 '아니야!'라고 항변했다.


그래놓고 서로 "너 왜 아니라고 그래? 내가 싫어?"라고 화내며 발광(?)했던 둘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명백하지만, 그때는 친구들에게 연인으로 보이는 게 부끄러웠던 것이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두 사람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떨어졌다. A씨는 여고로, B씨는 남고로. 하지만 그때도 매일 아침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갔다. 야자나 학원이 끝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버스정류장에서 상대방을 기다렸다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A씨는 "유딩때부터 고딩때까지 우리 집은 202동 601호, 남친은 202동 901호에 살았다"며 웃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B씨는 귀농한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형 집에 얹혀살았다. A씨는 "왜 그집 청소를 그렇게 열심히 해줬나 모르겠다. 전생에 식모였는지. 고마워하지도 않았는데"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말은 투박하게 하지만, 20대가 되어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끈끈한 사랑을 이어갔다.


7살 때부터 함께한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가도 실컷 돌아다니다 코 골며 자는 등 '강제 순결'을 지켜왔다.


마치 시트콤처럼 첫 뽀뽀도 얼떨결에 해치웠다. 야자 전 석식 시간에 A씨 학교 벤치에서 삼각김밥을 까먹고 콜라를 마시다가 서로 "너도 이거 먹어"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리다 우연히 입술이 부딪힌 게 첫 키스였다.


B씨는 A씨 입술이 닿자 "엄마야!"라고 외치며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A씨는 당시 무척 황당했고, 첫키스 장면 어디에도 로맨틱함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플레이리스트 '에이틴2'


이렇게 찰떡처럼 붙어있던 둘에게도 물론 이별의 위기가 있었다.


B씨가 군대에 가기 전 A씨에게 헤어지자고 한 것이다.


카페에서 분위기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데, 지나가다 이를 발견한 B씨 누나가 사연을 듣고 친동생에게 주먹질을 하면서 "기다려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뭐 하는 거냐"고 소리를 버럭 지른 것은 A씨가 잊을 수 없는 일화 중 하나다.


얼떨결에 또 헤어지지 못한(?) 두 사람. 결국 군대 가기 전에는 눈물의 키스를 나누며 짧은 이별을 고했다.


남친은 입대 후에도 늘 그렇듯 그녀를 무심하게 대했다. 그러다 휴가라도 나올 때면 "어떤 놈이 찝쩍대진 않냐"고 넌지시 물어보며 은근한 경계태세를 해 보였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영화 '기다리다 미쳐'


A씨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고, 제대한 B씨는 한참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A씨는 "20년 만난 남친이 뭐가 좋은지 비밀통장 만들어서 돈을 모았다. 걘 내가 모은 천만원 들고 어학연수 갔다 왔다. 난 미국 가 본 적도 없다"고 털어놨다.


그녀의 희생과 정성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B씨는, 졸업 후 반년의 백수생활 끝에 드디어 취업을 했다. A씨는 이제 그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받아볼 작정이었다.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기대해"라고 말했고, A씨는 "커플링이 갖고 싶어"라고 전했다. 유치원 때부터 장난감 반지 하나 사준 적 없던 B씨에게 못내 섭섭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첫 월급날, B씨는 "그건 너무 비싸"라고 말하며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기만 했다. 반지를 바라던 A씨는 "당시 '아..내 천만 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이 27살이 되던 해에는 부모님과 친구들이 먼저 '결혼'하지 않을 거냐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플레이리스트 '에이틴2'


B씨 어머니는 A씨에게 "난 네가 사고를 쳐도 괜찮다"라고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A씨는 B씨가 무성욕자가 아닌가 했다. 그만큼 두 사람은 알콩달콩 로맨틱하고 두근거리는 감정이 거의 없었다. 유치원 땐 아무것도 몰랐고 초, 중학교 땐 부끄러웠고, 고등학교 땐 학교가 달라 묵묵히 공부나 했을 뿐이다.


그래도 A씨는 점심시간마다 남친에게 오는 '점심 먹었냐?'라는 다섯 글자의 메시지가 참 반가웠다. 데이트도 아닌데 시간 맞춰 함께 퇴근할 때면 학창 시절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회사 근처가 아닌 그녀의 동네 근처에서 자취하는 B씨가 매번 A씨를 집에 바래다주며 "이래야 바래다주기도 좋지"라고 말하는 게 좋았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연인, A씨에 B씨는 그런 존재였다. 두 사람에게 더 이상 결혼이란 제도는 의미가 없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그러다 최근 사건이 터졌다. B씨와 집에서 데이트할 때가 많았다는 A씨는 연휴에 나가서 저녁을 먹자는 B씨의 말을 듣고 길을 나섰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처럼 집 근처 밥집이 아닌 예약한 레스토랑에 간 것이다. B씨는 모처럼 정장을 쫙 빼입고 나타났다.


그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A씨 손을 꽉 잡았다.


A씨가 어색해하며 "왜 이래 갑자기"라고 말하자 B씨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20년을 넘게 알고 지냈어. 사귀자 얘기한 적도 없고, 얼떨결에 유치원 짝꿍 돼서 계속 만나는 건데, 그게 좋은 사람이라 다행이야.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이후 B씨는 품속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 들었다. A씨는 "드디어 커플링 주는 거냐? 언제 주나 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B씨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줄 모르고 말이다.


"결혼하자 이제"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프러포즈한 그날, 남친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23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들어가는 A씨를 꼭 끌어안아줬다.


A씨는 "오글거리니 하지 말라"고 퉁을 놨지만, 돌아서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에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A씨는 글의 말미에 "연애라고 해도 될지 모를 정도로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유치원 때부터 만난 사람이랑 결혼한다"라며 "태어나서 처음 주는 반지를 결혼반지로 준다면서 (결혼을) 생각해보라는데, 이미 부부나 다름없는데 생각할 게 뭐 있나 싶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23년이나 연애했지만 막상 결혼을 한다니 너무 좋다는 A씨는 "다음 연휴에 만나 서로 모아둔 돈이 얼마 있나 계산해보기로 했습니다"라며 글을 마쳤다.


운명 그 자체인 첫 사랑과 결혼을 앞두고 그간의 연애사를 회상한 A씨의 글은 지난 2015년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것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인스턴트식' 애정과 설렘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요즘 세태에, 두 사람의 영화 같은 이야기는 '진짜 사랑'과 '오래되고 익숙한 연인'이 주는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