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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을 위해서"라며 선수들 '인권 포기' 강요하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민낯

고(故) 최숙현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 체육계의 인권 현실을 되돌아봤다.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박아영 기자 = 한창 청춘일 22살 국가대표 선수가 체육계 가혹행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는 생전 경주시청에서 활동할 당시 감독과 팀 닥터, 선배들로부터 구타와 가혹행위를 꾸준히 당해왔다.


그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문을 두들겼지만, 끝내 도움을 받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실업팀 선수 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천251명 중 33.9%(424명)가 언어폭력, 15.3%(192명)가 신체폭력, 11.4%(143명)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4등'


또 신체폭력의 경우 67.0%가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현재 체육계에서 인권 위에 있는 건 '성적'이다. 구타와 가혹행위가 좀 있더라도 메달을 따면 그만이다.


초·중·고교·대학교와 실업팀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내야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되고, 지도자들도 명성을 유지하려면 선수들의 성적이 필요하다.


지도자들은 선수 성적을 내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고 이것이 선을 넘으면 욕설이나 폭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인사이트2019년 한 태권도부 코치에게 체벌당해 멍 든 여중생의 몸 / 뉴스1


선수들은 지속적인 폭행에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법에 호소하기조차 어렵다.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와 선수로서의 미래를 모두 저버릴 각오를 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운동 말고 사실상 다른 길이 없기에 선수들은 끝내 체념하고 만다. 심지어 학부모들도 자식이 맞는 걸 알고도 체벌 정도로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못 본 체한다.


체육계의 이 권위적인 구조는 언제쯤 달라질 수 있을까.


체육 교육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성적지상주의를 만들어 낸 엘리트 체육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려야 하는 것.


인사이트故 최숙현 선수 아버지 / 뉴스1


대회 성적으로 진학하는 체육 특기자 제도를 폐지하고, 오로지 성적을 내기 위해 삶을 바치는 합숙 제도도 과감히 없애야 한다.


전반적으로 엘리트 체육이 아닌 생활 체육으로 구조 자체를 틀어야 한다. 선수들의 인권이 적어도 성적보다는 위에 있는 체육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가해자 처벌이 세지 않은 것도 문제다. 매번 이런 일이 생겨도 결과적으론 흐지부지됐다.


협회에서는 사건이 커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리지 않다가, 사태가 심각해지면 그제야 가해자를 체육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겠다며 단호한 처벌을 예고한다.


단순히 체육계 내부의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엄중 처벌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인사이트故 최숙현 선수 사건 호소문 발표하는 '팀킴' 컬링선수들 / 뉴스1


또 체육계의 인권 교육 부재도 개선돼야 할 것이다. 


지도부와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오직 운동만 해왔기에 인권 침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폭력, 가혹행위 등 인권 침해가 그저 당연한 것이 돼 버린 체육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대한체육회는 최 선수 사건 이후로 폭력 지도자 원스트라이크 아웃, 신고 포상제, 합숙훈련 허가제 도입 등 내용이 담긴 '스포츠 폭력 추방을 위한 특별 조치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이 스포츠 인권 문제의 제대로 된 개선책이 될 수 있을까.


인권 사각지대인 체육계에서 더이상 제2·3의 '최숙현'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인사이트故 최숙현 선수 어머니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