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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만들던 람보르기니는 페라리 CEO의 '독설' 듣고 홧김에 '슈퍼카' 개발했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예쁜 비주얼, 황소와 같은 파워풀한 주행 성능 등 람보르니기 슈퍼카의 '괴물 스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꿈의 슈퍼카 '람보르기니'


[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자동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꿈의 슈퍼카 브랜드'로 불린다는 '람보르기니'.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예쁜 비주얼, 황소와 같은 파워풀한 주행 성능 등 람보르니기 자동차들의 '괴물 스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야말로 '우주 최강의 슈퍼카 브랜드'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셈.


그럼 람보르기니는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을까. 탄생 비하에 대해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설을 소개하겠다.


인사이트페루치오 람보르기니 / gettyimageskorea


1916년 4월 28일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어릴 적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자동차에 대한 엄청난 열정으로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군용 차량을 정비하는 군인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전쟁이 끝난 후 람보르기는 군용 트럭을 농업용 트랙터로 개조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1949년에는 트랙터의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해 제작하는 '람보르기니 트랙터 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이 된 람보르기니는 어느날 갑자기 슈퍼카 제작으로 눈길을 돌린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평소 슈퍼카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람보르기니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계획을 지지했지만 사실 람보르기니는 '특별한 이유' 때문에 슈퍼카 제작에 나서게 됐다.


바로 명품 자동차 브랜드 '페라리'를 설립한 엔초 페라리(Enzo Ferrari)의 '독설' 때문이었다.


엔초 페라리가 람보르기니에게 날린 독설 "트랙터나 만들던 사람이 슈퍼카를 아냐?"


앞서 설명한 것처럼 슈퍼카에 관심이 많았던 람보르기니는 1960년대 초 당시 인기 슈퍼카였던 '페라리 250GT'를 구입했다.


그러다 주행 중 차량 결함을 발견한 람보르기니는 이를 지적하고 또 개선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엔초 페라리를 찾아 갔다. 그런데 엔초 페라리는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인사이트엔초 페라리 / gettyimageskorea


"당신은 트랙터에 매달리고, 나는 슈퍼카 제작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트랙터나 만들던 사람이 슈퍼카를 어떻게 알겠나? 트랙터나 운전해라!"


페라리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모욕감을 준 이 말 한 마디는 람보르기니를 자극했고, 그는 이 일을 계기로 "페라리를 능가하는 슈퍼카를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즉시 자동차 회사 설립에 착수한 람보르기니는 1962년 자신의 이름을 딴 '람보르기니'를 창업했다.


그리고 "무조건 페라리보다 좋고, 빨라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페라리에 대적할 슈퍼카를 만들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했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무조건 페라리보다 좋고, 빨라야 한다"


또한 그는 조토 비자리니, 파올로 스탄자니, 잔파울로 달라라 등 페라리에 근무했던 천재 엔지니어들을 영입했다. 오만한 엔초 페라리를 꺾겠다는 '의지'가 상당했던 셈이다.


이런 불 같은 의지는 1966년 세계 최초의 '미드십 엔진(엔진을 운전석 뒤쪽에 배치한 방식)'을 탑재한 2인승 슈퍼카 '미우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인사이트람보르기니 '미우라' / gettyimageskorea


미우라는 최대 출력 350마력에 최고 시속 295km라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슈퍼카였다.


미우라의 출현에 세상은 크게 놀랐다.


페라리도 패배 인정 "미드십 엔진 방식은 매우 우수하다"


람보르기니를 무시했던 페라리도 "미드십 엔진 방식은 매우 우수하다"는 말로 패배를 인정하면서 이후 미드십 엔진 방식이 적용된 슈퍼카를 생산했을 정도. 


미우라, 즉 람보르기니의 '야심작'은 분명 슈퍼카의 역사를 새로 쓴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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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페라리가 우리를 의식할 뿐 아니라 흉내까지 내고 있다!"


과거의 굴욕을 말끔히 씻어내고 '슈퍼카의 전설'로 거듭난 람보르기니가 한 말이다.


그런데 람보르기니는 죽을 때까지 페라리에 '라이벌 의식'을 가졌던 모양이다.


1973년 불어닥친 석유 파동과 경제 불황의 여파로 1974년 파산한 람보르기니를 스위스 사업가에게 매각하고 은퇴한 람보르기니는 '라이벌' 페라리가 1988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페라리가 90세까지 살았으니 나는 91세까지 살아 페라리를 이기겠다"고 말했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페라리가 90세까지 살았으니 나는 91세까지 살아 페라리를 이기겠다"


하지만 이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는 페라리가 숨을 거둔 5년 뒤인 1993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인사이트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람보르기니가 회사를 떠나고, 또 세상을 떠났지만 "세계 최강의 슈퍼카를 만들겠다"는 그의 정신은 람보르기니에 그대로 계승됐다.


람보르기니는 미우라, 쿤타치를 시작으로 경이적인 성능으로 다른 브랜드들을 압도하며 디아블로, 무르시엘라고, 아반타도르, 우라칸 등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슈퍼카들을 잇달아 출시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타보고 싶은 꿈의 슈퍼카'에 등극했다.


국내에서도 '꿈의 슈퍼카' 람보르기니는 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 등 유명 인사들이 아끼는 '애마'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