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일에 신규 전력사업, 강동수에 현금 창출·투자 연결 맡겨
장용호 유임한 SK㈜에는 김선혁 보강...남은 사업 재편 마무리
추형욱 동남아행까지 연결하면 발전·AI 인프라 투자 방향 드러나
SK이노베이션이 분기 영업이익 3조7043억원을 발표한 이튿날, SK그룹은 전력 전문가와 재무통을 새 경영진으로 내정했다. 지주회사 SK㈜에는 포트폴리오 재편 전문가를 보강했다. 최대 실적을 유지하는 일과 그 이익을 다음 사업으로 연결하는 일을 함께 맡긴 인사로 해석된다.
30일 SK그룹이 발표한 사장단 인사에서 정승일 사장은 SK이노베이션 신임 CEO로, 강동수 사장은 SK이노베이션 각자 대표이사 겸 SK에너지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장용호 대표가 유임한 SK㈜에는 김선혁 SKC 전략부문장이 담당 사장으로 합류한다.
최태원 회장의 이번 인사는 세 사람을 보면 실마리가 잡힌다. 정 사장에게는 신규 전력사업을, 강 사장에게는 기존 사업의 현금 창출과 신사업 투자 연결을 맡겼다. 김 사장을 보강한 SK㈜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조속히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정리를 마무리하면서 다음 투자를 준비하려는 인사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최대 실적 뒤에는 공급 차질...호황 이후도 준비해야
SK이노베이션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532.5%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SK에너지가 1조2058억원, SK엔무브가 1조90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SK엔무브는 한 분기에 종전 최대 연간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다만 이익이 급증한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 차질이 있다. 중동 지역 정유설비의 가동 차질과 러시아의 경유 수출 제한 등이 석유제품 수출마진을 높였다. 윤활유도 기유 공급 부족으로 제품과 원료의 가격 차이가 확대된 효과를 봤다.
회사는 공급 여건이 정상화되면 높은 기유 스프레드가 점진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호황을 장기 투자계획의 기준으로 그대로 가져가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적자를 기록한 배터리 사업의 회복도 남아 있다. SK온 배터리 사업은 3분기 80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정유·윤활유에서 이익이 늘었지만 돈 쓸 곳도 많다. 적자가 이어지는 배터리 사업에 더해 신규 전력사업 투자도 준비해야 한다. 차입금을 얼마나 더 줄일지, 새 사업에는 얼마를 넣을지가 새 경영진의 판단에 달렸다.
전력사업 맡길 정승일, 투자 연결할 강동수
정승일 사장의 이동 경로를 보면 SK가 준비하는 사업의 방향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정 사장은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지냈다. 올해 6월에는 SK㈜ 미래성장담당 사장과 SK하이닉스 에너지TF 사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SK는 전력·에너지와 반도체 공장 구축 등 미래 성장사업에서 정 사장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약 5개월 만에 발전·가스 사업을 보유한 SK이노베이션의 경영을 맡게 됐다. SK하이닉스에서 전력 전략을 맡았던 정 사장이 이제는 발전·가스 사업을 직접 경영한다. 신규 전력사업을 발굴하고 키우는 일도 그의 몫이 됐다.
함께 내정된 강동수 사장은 사업과 재무를 모두 경험했다. SK에너지 경영기획실장과 솔루션·플랫폼 추진단장을 지냈고, SK이노베이션에서는 포트폴리오부문장과 재무·전략부문장을 맡았다. 이후 SK㈜ PM부문장으로 투자자산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강 사장이 SK에너지 대표까지 겸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기존 사업에서 현금을 만들어야 하는 자리와 그 현금을 신사업 투자로 연결해야 하는 자리를 함께 맡는다. 회사가 발표한 역할대로라면 정 사장이 신규 전력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강 사장은 기존 사업의 수익과 투자 여력을 함께 관리하게 된다.
두 사람을 각각의 신임 대표로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이번 인사의 성격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전력사업의 방향을 잡을 경력과 투자·재무를 관리할 경력을 같은 경영진에 배치했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SK㈜에는 재편 전문가...다음 투자 앞에 남은 정리
지주회사 인사도 이와 연결된다. SK㈜는 장용호 대표 체제를 유지하면서 포트폴리오 관리 전문가인 김선혁을 담당 사장으로 발탁했다. CEO를 바꾸기보다 기존 경영진 곁에 사업 재편을 맡을 인력을 보강한 것이다.
김 사장에게는 포트폴리오 재편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요구된다. 신규 투자에 나서기 전에는 기존 투자자산에서 얼마를 회수할 수 있는지, 추가 자금 투입을 어느 사업에 집중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지주사의 재편 작업은 이런 선택을 구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인사는 구체적인 자금 이전 계획보다는 기존 사업 관리와 다음 투자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방향성이 보인다.
SK㈜가 직접 조속한 완수를 과제로 제시한 만큼 아직 마무리할 일이 남아 있다. 다만 에너지 계열사에는 신규 전력사업을 맡을 경영진을 함께 배치했다. 정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성장사업을 고민하는 대신 두 작업을 병행하는 구도다.
물론 그렇다고 SK이노베이션의 이익이 곧바로 SK㈜의 투자재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금은 각 회사의 재무구조와 투자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추형욱의 동남아행, 다음 투자 후보는 이미 현장에 있다
그렇다면 다음 투자는 어디에서 구체화될까. 이번에 신설된 동남아 총괄에 추형욱 사장을 보임한 인사가 단서다.
추 사장은 지난 5월 SK이노베이션 대표로 베트남 뀐랍 LNG 프로젝트 기반시설 착공식에 참석했다. SK이노베이션과 현지 파트너들이 추진하는 이 사업은 총사업비 약 23억달러 규모로, 1.5GW LNG 복합화력발전소와 LNG 터미널 등을 건설한다.
SK는 이 사업을 발전소 건설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생산한 전력을 첨단 산업단지에 공급하고 AI 데이터센터 등을 연계하는 구상도 제시했다. 추 사장은 이미 진행 중인 이 사업을 경험한 상태에서 그룹의 동남아 사업을 총괄하게 됐다.
정승일의 SK이노베이션행과 추형욱의 동남아행을 이어 보면, 다음 투자 방향은 기존 LNG·발전 기반을 활용해 AI 인프라 수요와 연결하는 사업에서 먼저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사업 경험을 가진 경영자를 회사와 해외 시장 양쪽에 배치했다는 점이 이 전망을 뒷받침한다.
투자할 곳을 정하는 것과 실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별개의 결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3분기 말 순차입금을 지난해 말보다 3조원 줄였다고 밝혔다. 주주환원 방안도 재무 안정성과 투자·자금 소요 등을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 신규 사업에는 기존 사업 투자, 차입금 감축, 주주환원과의 우선순위 조정이 뒤따른다.
뀐랍 LNG 사업의 상업운전 목표는 2030년 12월이다. SK가 이번 인사에서 제시한 신규 전력사업의 투자 규모와 재원, 동남아 총괄의 투자 의사결정 권한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