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과 자본금 100억원 마련해 출발...외환위기 겪으며 키운 금융그룹
일본 자본이 한국 증권사 사들이던 시절 지나, 한국 자본이 일본으로
캐나다·미국서 쌓은 인수 경험...29일 이사회서 새 M&A 논의
1997년이라는 숫자에는 아직도 'IMF'가 따라붙는다. 나라가 달러를 구하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아야 했던 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에게는 회사를 세운 해이기도 하다. 창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 회사가 29년 만에 고객자산 1500조원 규모의 금융그룹으로 자랐다. 이번에는 일본 증권사 인수에 나섰다. 외환위기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국에서 출발한 금융회사가 일본 금융회사의 인수자로 나서는 것이다. 박 회장의 이번 행보를 그의 개인적인 성공담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27일 박 회장은 서울 경희대에서 열린 경영대학원 설립 60주년 기념 포럼에서 새로운 인수·합병(M&A)을 예고했다. 강연 후 취재진에게 인수 대상을 "아시아권의 한 증권회사"라고 설명하고, 관련 이사회가 29일 열린다고 밝혔다. 대상은 일본 증권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회사명과 거래 규모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자본도, 이름값도 부족했던 창업 첫해
박 회장은 처음부터 해외 금융회사를 살 만한 돈을 갖고 출발하지 않았다. 증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른바 '월급쟁이'였다. 혜안과 투자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본금 100억원을 마련했다. 그렇게 1997년 미래에셋을 세웠다.
그는 2024년 국제경영학회(AIB) 기조연설에서 창업 초기 형편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당시 충분한 자본도, 쌓인 명성도 없었습니다"
직원들의 월급날이 너무 빨리 돌아온다고 느끼기도 했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도 기억한다고 했다. 오늘날의 미래에셋 규모만 보고는 떠올리기 어려운 창업자의 고민이다.
그해 12월 4일 IMF는 한국에 약 210억달러 규모의 대기성 차관을 승인했다. 한국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흔들렸고,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낮췄다. 새로 문을 연 금융회사도 그런 시장에서 고객을 찾아야 했다.
박 회장은 당시 한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회고했다. 위기 이후 주식형 뮤추얼펀드를 내놓으며 사업을 키웠다. 한국 시장에서 번 돈을 해외 사업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 자본을 쌓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지난 8월 박 회장이 임직원 행사에서 밝힌 미래에셋그룹의 고객자산은 1500조원 규모다. 창업 당시 자본금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지만, 고객의 돈을 모으고 관리하는 금융회사로서 얼마나 커졌는지 보여준다.
일본이 한국 증권사를 사던 때와 달라진 풍경
한일 금융 관계에 대입하면 이번 인수 추진의 의미는 조금 더 선명해진다.
2004년 일본 SBI그룹의 전신인 소프트뱅크인베스트먼트는 한국 이트레이드증권 지분을 사들여 보유 지분율을 87%로 높였다. 한국 증권사가 일본 금융그룹의 연결 자회사로 편입된 거래였다. 일본 자본이 한국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찾아 들어오던 사례다.
22년 뒤 미래에셋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에서 영업하는 증권사를 인수해 사업을 넓히려 한다.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한국에서 자란 금융회사가 일본 금융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는 사례가 하나 더 생긴다.
그 사이 국가의 신용을 평가하는 숫자도 달라졌다. 피치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은 한국이 'AA-', 일본이 'A'다. 정부의 채무 상환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이 두 단계 높다.
국가신용등급과 개별 기업의 인수 능력은 서로 다른 문제다. 그래도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의 금융회사가 일본 증권사를 인수하는 장면에 이 숫자를 겹쳐 보면, 한국의 대외 신뢰와 자본 축적이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한일 금융 관계를 과거의 위아래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워졌다.
'글로벌' 목표한 박현주, 40대에 영어부터 다시 배웠다
해외로 나가는 준비는 화려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 설립 3년 뒤 미국 UC버클리의 영어 입문 과정에 등록했다. 40대였던 그는 10대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했고, 이후 하버드대 최고경영자과정을 밟았다. 2024년 기조연설에서 직접 공개한 경험이다.
해외 금융회사를 인수하는 일은 그 뒤에 따라왔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11년 캐나다의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 호라이즌스를 인수했다. 2018년에는 미국 글로벌X를 품었다. 현지 금융회사를 사들여 그 시장에서 사업을 키우는 경험이 쌓였다.
일본 증권사 인수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쌓은 자본을 해외에 투입하고, 인수한 회사의 인력과 고객 기반을 활용해 사업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다. 해외 M&A가 일회성 사건을 넘어 그룹의 성장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거래의 무게는 실제 내용이 나와야 판단할 수 있다. 어떤 회사를 얼마에 사고, 어느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는지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증권사를 인수한다는 상징에 걸맞은 사업 성과를 내는 일은 그다음 과제다.
증권업 한다고 밥도 못 얻어먹었던 청년
전날(27일) 경희대 강연장에 선 박 회장은 버건디색 재킷에 면바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증권업에 뛰어들었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 전 인사를 하러 갔다가 장인에게 밥도 얻어먹지 못했다는 일화였다. 당시에는 증권업을 한다고 하면 투기한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는 설명이다. 지금의 미래에셋을 만든 선택이 그때부터 주변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증권시장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대학 강의였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자본시장이 중요하다는 교수의 말을 듣고 직접 시장을 찾아갔다. 칠판에 가격을 적던 시절, 움직이는 주가와 그래프에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사회적 대접은 변변치 않았지만 앞으로 커질 시장이라고 봤다.
그 경험을 이야기한 뒤 박 회장은 학생들에게 현재의 소득이나 편안함만으로 직업을 고르지 말라는 취지의 조언을 건넸다.
"사실은 미래를 보고 직업을 선택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