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토)

현대차·기아 연구원들이 '아이디어 페스티벌'서 선보인 기술, 34년 차 임원 마음도 움직였다

현대자동차·기아가 임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제 기술로 구현하는 '2026 아이디어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인공지능(AI)으로 영유아 상태를 살피는 기술부터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스마트 안경, 차량 멀미를 줄이는 기술까지 미래 모빌리티의 다양한 가능성이 한자리에 모였다.


19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이날 열린 아이디어 페스티벌 본선에서는 연구원들이 약 4개월 동안 직접 제작한 6개 작품이 공개됐다. 참가팀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현장에서 직접 시연하며 아이디어를 실물로 구현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현대자동차그룹 2026 아이디어 페스티벌 / 인사이트


올해로 17회째를 맞은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현대차·기아 R&D본부와 AVP본부가 2010년부터 매년 개최해 온 사내 연구개발 행사다. 임직원들의 자유로운 발상을 실제 기술과 서비스로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는 남양연구소 준공 30주년을 맞아 '혁신의 기원(Origin of the next)'을 주제로 진행됐다. 지난 4월부터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했으며, 사전 심사를 통과한 6개 팀에 제작비와 작업 공간을 지원했다.


트렁크 활용성 높인 아이디어가 대상... AI 돌봄·스마트 안경도 눈길


대상 수상작 '트라이폴드 러기지보드'를 시연하는 모습 / 현대차·기아


이번 본선에서는 운전자와 탑승객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을 해결하려는 아이디어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첨단 AI 기술부터 차량의 기본적인 공간 활용성을 개선하는 기술까지 분야도 다양했다.


대상은 트렁크 공간의 활용성을 높이는 '트라이폴드 러기지 보드(Trifold Luggage Board)'가 차지했다.


'트라이폴드 러기지 보드(Trifold Luggage Board)' 개발팀 / 인사이트


트라이폴드 러기지 보드는 차량의 적재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상된 기술이다. 트렁크 하단 공간까지 활용해 적재 높이를 확보함으로써 기존에는 싣기 어려웠던 유모차나 키가 큰 화분 등도 보다 쉽게 실을 수 있도록 했다.


AI를 활용한 첨단 기술들이 경쟁한 가운데 차량 이용자의 일상적인 불편을 해결하는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지원하기 위한 스마트 글라스 '아이-브릿지(Eye-Bridge)' / 인사이트


최우수상을 받은 '아이-브릿지(Eye-Bridge)'는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돕는 스마트 글라스다. 차량 중심의 모빌리티 기술을 보행자의 이동 편의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어린 자녀를 둔 운전자를 고려한 아이디어도 있었다.


'핀 프린트 시트(Pin Print Seat)'는 아이의 신체에 맞춰 카시트의 형태를 바꾸는 기술이다. 아이의 체형에 대응할 수 있도록 좌석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AI 기반 영유아 상태 모니터링 기술 '늘봄' / 인사이트


AI 기반 영유아 상태 모니터링 기술인 '늘봄'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아이디어다. 차량이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탑승자의 상태를 살피는 공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상용차 운전자의 일상에 주목한 작품도 있었다. '히어로 레코더(Hero Recorder)'는 운전자의 하루를 1분짜리 영상으로 기록하는 기술이다. 장시간 도로 위에서 생활하는 상용차 운전자의 일상을 짧은 영상으로 남길 수 있도록 구상됐다.


운전자의 하루를 1분짜리 영상으로 기록하는 '히어로 레코더(Hero Recorder)' / 인사이트


'멀미 Zero'는 차량의 엠비언트 라이트와 뒷좌석 화면 등을 활용해 탑승객의 멀미를 줄이는 기술이다.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을 차량 내부의 시각적 요소를 활용해 완화하려는 접근이다.


각 팀의 발표와 시연이 끝난 뒤에는 전문 심사위원 5명과 임직원 심사위원 100명이 작품을 평가했다. 구현성, 독창성, 기술 적합성, 고객 지향성, 비전성 등 5개 항목을 기준으로 최종 순위를 결정했다.


싼타페·투싼에도 적용된 직원 아이디어... 차량용 AI 앱 개발로 확장


이날 공개된 아이디어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실제 양산 차량에 적용될 가능성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는 과거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발굴한 기술을 차량 개발에 반영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싼타페의 '양방향 멀티 콘솔'이다. 2021년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다기능 콘솔'을 실제 차량에 적용한 것으로, 운전석과 뒷좌석 양쪽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양방향 멀티콘솔 / 현대자동차그룹


2025년 최우수상 수상작인 '트레일러 견인 성능 향상 소프트웨어'도 북미와 유럽 등에서 판매되는 5세대 투싼에 적용됐다.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기술도 실증 단계로 발전했다. 2023년 대상을 받은 '데이지(Day-Easy)'는 시각장애인의 버스 탑승을 돕는 기술로, LG유플러스와 협업해 실증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차량용 소프트웨어 분야로도 아이디어 발굴 영역을 넓혔다.


차량 소프트웨어 플랫폼 'Pleos(플레오스)'의 앱 개발을 주제로 사내 해커톤 '24H Code Race'를 신설하고, 지난 8월 20일부터 21일까지 무박 2일 일정으로 개발 경연을 진행했다.


24H Code Race HACKATHON / 현대자동차·기아


해커톤 대상은 어린이의 반응에 따라 이야기 내용이 달라지는 반응형 오디오 동화 앱 '테일싱크(TaleSync)'가 차지했다. 현대차·기아는 우승작을 포함해 다양한 아이디어의 실제 차량 탑재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우리가 아직은 희망이 있구나"... 34년 차 임원이 느낀 변화


이재규 현대차·기아 차량개발1담당 전무는 이날 여섯 팀의 발표를 지켜본 뒤 회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최근 파리모터쇼에서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확인한 뒤 지난 주말까지 마음이 무거웠다고 털어놨다. 중국 업체들의 빠른 기술 발전과 가격 경쟁력이 현대차·기아에도 적지 않은 도전 과제라는 점을 체감한 것이다.


이재규 현대차·기아 차량개발1담당 전무 / 인사이트


처음에는 이날 공개된 아이디어를 보면서도 차량 개발에 필요한 재료비와 투자비 등 현실적인 제약을 떠올렸다. 아이디어가 실제 차량에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여섯 팀의 설명을 차례로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우리가 아직은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발표를 들은 뒤 미래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 전무가 특히 높이 평가한 것은 기술의 완성도보다 연구원들의 도전적인 자세였다. 입사 34년 차인 그는 여러 업무를 경험했지만 이날 발표된 아이디어와 같은 도전은 자신도 해보지 못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당당하게 공개하는 임직원들의 모습이 뿌듯했다고도 했다.


2026 아이디어 페스티벌 참가팀 단체 기념 사진 / 현대차·기아


그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4~6개월 동안 노력한 참가자들에게 감사하다"며 오랜 기간 아이디어 페스티벌을 이어온 것 자체가 회사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날 공개된 시제품들이 실제 양산 차량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비용과 투자 규모, 생산 가능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연구원들이 일상적인 불편에서 새로운 기술 개발의 실마리를 찾고, 이를 직접 구현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이 전무는 "16년을 이어온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현대차·기아가 모빌리티의 혁신을 거듭할 수 있었던 출발점이었다"며 "앞으로도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연구개발 문화에 혁신을 더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