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3일(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따뜻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는 신비한 '얼음골'의 비밀

지난 여름, 바깥 기온이 35도까지 치솟는 폭염에도 경남 밀양시 산내면 재약산 북쪽 기슭 바위틈에서는 손이 시릴 정도의 찬바람이 새어 나왔다고 한다.


같은 하늘 아래 계곡물은 5도 안팎을 유지하고, 돌무더기 사이사이에는 고드름이 맺힌 모습까지 포착된다. 


반대로 한겨울에는 얼어야 할 계곡물에서 더운(?) 김이 피어오른다고. 이 극과 극의 온도차의 '비밀'은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너덜지대 특유의 공기 순환이 빚어내는 열역학적 결과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된 밀양 얼음골은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6월부터 8월 사이에도 바위틈 기온이 영하권까지 떨어지는 등 피서지 및 체험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초여름 날씨를 보인 13일 경남 밀양 산내면 얼음골 결빙지에 얼어붙은 얼음 옆으로 설치된 온도계가 -1도를 나타내고 있다. '밀양의 신비'로 불리는 천연기념물 224호 얼음골은 봄과 여름철에 걸쳐 바위틈에 얼음이 생기고 찬 바람이 나온다. 이날 밀양 낮 최고기온은 27.5도를 기록했다. 2026.4.13/뉴스1


바위틈의 여름철 평균 기온은 0.2도, 계곡물 온도는 5도 안팎에 머문다. 이런 역설적인 기후 탓에 밀양 얼음골은 오래전부터 '밀양의 신비'로 불려왔고, 지역 관광 자원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명소로 자리를 지켜왔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결빙 현상이 보고된 곳은 경북 의성 빙계계곡과 경기 포천 한탄강 일대 등 극소수에 불과한데, 그중에서도 밀양 얼음골은 결빙 범위와 지속 기간이 가장 뚜렷해 학계 연구 대상으로도 꾸준히 거론돼왔다. 지질학계에서는 이런 지형을 '풍혈(風穴)'이라 부르며, 일반적인 동굴 냉기와 달리 암괴 사이 공극의 크기와 통기성이 냉각 강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바위틈서 영하권 냉기


이 현상의 비밀은 계곡을 가득 메운 '애추(talus)', 이른바 너덜지대의 구조에 있다.


거대한 암괴가 겹겹이 쌓인 너덜지대 내부에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극, 즉 바위와 바위 사이의 빈 공간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밀양 얼음골 계곡에 낮기온 20도을 웃도는 14일 얼음기둥이 형성되었다. / 밀양시


겨울철 기온이 떨어지면 무겁고 차가운 공기가 이 공극을 따라 땅속 깊숙이 가라앉아 얼어붙은 채로 갇힌다.


바위 자체가 두꺼운 단열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하에 고인 찬 공기는 봄이 지나도록 쉽게 데워지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상황이 역전된다. 지표면이 달궈지면서 바깥 공기가 가벼워져 위로 상승하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하에 갇혀 있던 찬 공기가 바위틈을 타고 바깥으로 빨려 나오는 대류 순환이 발생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한여름에도 바위틈 주변 온도가 뚝 떨어지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거꾸로 땅속에 저장된 상대적으로 따뜻한 공기가 바깥으로 흘러나오면서 계곡물이 얼지 않고 김이 서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단열팽창이 만드는 냉기


여기에 한 가지 물리 현상이 더해져 냉기는 한층 강해진다. 지하의 찬 공기가 좁은 바위틈을 통과할 때 압력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기체가 팽창하는 '단열팽창' 현상이 일어난다.


밀양 얼음골 계곡에 낮기온 20도을 웃도는 14일 얼음기둥이 형성되었다. / 밀양시


압력이 낮아진 기체는 외부와 열을 주고받을 틈도 없이 스스로 에너지를 소모하며 온도가 더 떨어지는데, 이를 물리학에서는 '줄-톰슨 효과'라고 부른다.


냉장고나 에어컨이 냉매를 좁은 관으로 통과시켜 냉기를 만드는 원리와 본질적으로 같다. 결과적으로 땅속에 저장된 찬 공기가 바위틈이라는 천연 밸브를 통과하면서 두 번째로 냉각되고, 그 공기가 지표로 뿜어져 나오면서 한여름의 얼음골을 영하권 체감 온도로 만든다. 암괴 두께와 공극 크기, 경사도에 따라 냉기 세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계곡 안에서도 결빙지별로 체감 온도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체류형 관광지로 몸집 키워


밀양시는 이 희귀한 자연 현상을 지역 관광의 핵심 콘텐츠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시는 지난 4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반하다 밀양 반값여행'을 운영해 숙박과 식사, 체험비의 절반을 모바일 상품권으로 환급하는 정책을 폈고, 얼음골과 영남알프스, 밀양강 등 자연자원을 묶어 단순 방문이 아닌 체류형 관광지로 전환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철도 이용객을 위한 운임 할인과 주말 테마형 시티투어도 함께 운영돼 접근성을 높였다. 특히 시는 올 하반기 얼음골 일대에 체험형 공간을 새로 조성하는 계획을 세워, 결빙지를 둘러보는 데 그쳤던 기존 동선을 체류 시간이 긴 복합 관광 코스로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얼음골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해발 1000m 이상의 산봉우리 9개가 이어진 영남알프스 능선을 도보 10분 거리에서 조망할 수 있어, 냉기 체험과 산악 경관을 함께 즐기려는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 '밀양시'


매년 여름 1만명 안팎의 관광객과 등산객이 결빙지 주변을 찾아 손발을 담그거나 바위틈에 손을 대보며 냉기를 직접 확인하고 있으며, 지역에서는 계곡물 체험과 스탬프 투어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매년 이어가고 있다.


밀양시 관계자는 "얼음골은 영남알프스와 더불어 밀양을 대표하는 체류형 관광의 최적지"라며 "관광객들이 자연의 신비를 체험하며 충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콘텐츠를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튜브 '밀양시'


결빙지 일대는 등산로 입구부터 도보 10여분 거리에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도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고, 주차장과 매점 등 기본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시는 폭염이 장기화할수록 바위틈 냉기 체감도가 더 뚜렷해진다는 방문객 반응을 반영해, 결빙지 안전난간과 안내판을 보강하는 정비 작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YouTube '밀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