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당국이 조선인 학살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도 가해자에 대한 검거와 사법 처리를 고의로 회피하며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가나가와현 한 곳에서만 조선인 170명이 피살된 사건 80건이 확인됐지만, 실제 체포로 이어진 사례는 단 3건에 그쳤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6일 자 보도를 통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구자 고토 아마네의 당시 정부 공문서 분석 내용을 공개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 근거가 된 문건은 '선고비수(鮮高秘収) 제22호'다.
해당 문건은 1923년 11월 당시 야스코치 아사키치 가나가와현 지사가 내무성 지시를 받아 작성한 약 50쪽 분량의 보고서다.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과 중국인의 범죄 및 보호 상황 등을 조사한 문서로, 재일 역사학자인 고(故) 강덕상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가 과거 고서점에서 찾아내 지난 2023년 자료집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렸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진 직후 가나가와현에서 조선인이 저지른 범죄는 14건으로 파악됐다. 이 중 9건은 용의자가 일본인 군중에게 살해당했으며, 신원이 확인된 용의자는 5명이었다.
혐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것은 절도 4건뿐이었고, 이 역시 소수 인원의 단순 범죄였다. 당시 확산했던 '우물 독극물 살포'나 '집단 폭동' 같은 흉흉한 유언비어를 뒷받침할 조직적 범죄는 일절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일본인 군중이 조선인을 겨냥한 살상 행위는 무려 80건에 달했다. 이로 인해 조선인 170명이 목숨을 잃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피해자는 전원 남성이었으나 신원이 확인된 인원은 34명에 불과했다.
일본 당국의 노골적인 감싸기는 통계로 확인됐다. 조선인 살상 사건 80건 중 가해자가 특정된 사건은 10건에 불과했고, 실제 사법 당국에 붙잡힌 사건은 살인 2건과 상해 1건 등 단 3건뿐이었다.
당시 일본 내무성 통계를 보더라도 가나가와현의 검거율은 5.1%에 머물렀다. 계엄령이 선포된 도쿄부(97.5%)와 사이타마현(100%), 지바현(46.1%)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고토는 "학살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범인을 검거하지 않고 재판에 넘기지 않은 것은 근대국가에서 결코 있어선 안 될 중대한 은폐 처리"라고 지적했다.
다만 고토는 국가 차원의 조직적 학살 주도설에는 선을 그었다. 당시 경찰의 묵인이나 군부의 살상이 존재했더라도 국가 전체가 조직적으로 지휘했다는 해석은 역사적 정황과 맞지 않다는 취지다.
그는 조선인 학살 기록이 없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지난 2023년 8월 마쓰노 히로카즈 당시 관방장관은 "정부 내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고토는 "내무성과 사법성, 계엄사령부, 조선총독부, 지자체와 경찰이 조사한 공문서가 분명히 다수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규모 7.9의 간토대지진으로 10만 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났으며, 당시 유언비어로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으나 일본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