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월 베트남 여행 중 급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진 구진희(55세) 씨가 가족과 생전에 나눴던 약속을 지키며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원장 이삼열)은 구 씨가 9월 18일 고신대학교복음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을 통해 간과 양측 신장을 3명의 환자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구 씨는 9월 12일 딸과 함께 베트남을 여행하던 중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며 뇌출혈로 쓰러졌다. 현지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국내 병원으로 이송된 뒤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결국 뇌사 판정을 받았다.
남편 김기선 씨는 "평소 아내와 마지막 순간 장기기증을 하면 좋은 일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라며 "딸들도 아내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고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21년 자신의 어머니가 시신을 기증한 일이 아내와 가족들에게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두 딸 역시 엄마의 뜻과 '남을 돕고 선한 영향을 끼치자'는 가족의 가치관에 따라 기증에 동의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구 씨는 1994년 남편과 결혼해 두 딸을 뒀다. 2001년 임신 중 특발성 혈소판 감소증 진단을 받은 구 씨는 치료 반응이 좋지 않아 25년간 반복적으로 입원해야 했다. 그러나 구 씨는 자신의 아픔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다.
2015년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부산으로 이주한 구 씨는 남편 회사의 신앙 모임에서 활동하며 어려움에 처한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됐다.
어린 자녀들을 돌봐주고, 신입 직원들이 회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환우들을 문병하고 위로했으며, 캄보디아와 몽골 등 해외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몸 상태가 안정될 때면 구 씨는 가족과의 여행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 항공사 기장인 남편 김 씨는 여행하는 동안 아픔을 잊고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며 자주 여행 기회를 마련했다.
1년에 서너 차례씩 함께 떠났던 시간은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됐다. 마지막 여행지인 베트남에서 구 씨가 쓰러지기 전날 작은딸 지원 씨에게 건넨 "엄마가 힘들어도 이거 보여주려고 같이 왔다"라는 말은 딸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두 딸은 구 씨의 삶을 채운 또 다른 이유였다. 구 씨는 지난해 8월 큰딸 지수 씨가 낳은 첫 손주를 품에 안으며 크게 기뻐했고, 내년 결혼을 앞둔 작은딸 지원 씨와 함께 결혼 준비를 했다. 두 딸은 손주의 성장도, 결혼식도 함께하지 못하게 된 어머니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남편 김 씨는 아내에게 "여보, 당신을 만난 지 33년,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 잘 간직할게.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걱정 말고 편히 쉬어. 사랑하고 너무 고마웠어. 안녕"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큰딸 지수 씨는 "앞으로도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엄마의 가치관을 이어가겠다"라고 다짐했고, 작은딸 지원 씨는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행복했다"라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25년의 긴 아픔 속에서도 늘 가족과 이웃을 먼저 살폈던 구진희 님이 마지막 순간까지 3명의 환자에게 생명을 나누셨다"라며 "숭고한 결정을 내려주신 유가족께 깊은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