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호석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한다.
해고 동료의 장례식장에서도, 심리치료 시간에도 그는 말을 삼킨다. 눈물이 차오르다 꾹 참고, 입을 열려다 다시 닫는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창동 감독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박물관에서 열린 '가능한 사랑' 특별 상영 후 관객과의 대담에서 이 캐릭터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 남자가 미국 남자들보다 억압에 훨씬 더 길들어져 있다"며 "남자보다 여자가 더욱 길들어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한국 남성성의 특징을 분석하며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모습이 또 다른 가족주의 억압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배신과 좌절로 생긴 분노를 안으로만 밀어 넣고 폭발시키지 못하는 것도 억압받은 한국 남성성의 단면"이라고 덧붙였다.
설경구는 "호석은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라며 "제 아버지 세대가 호석 같았고, 저 자신도 호석과 닮았다"고 밝혔다.
호석은 대기업 생산직 정직원으로 일하다 사모펀드에 회사가 넘어간 뒤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노동자다. 저항 과정에서 경찰 구타를 당하고 동료들에게 배신당하면서 깊은 상처를 입는다.
설경구는 "마음의 상처가 깊으면 말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침묵하게 된다"며 "몸 자체가 언어가 된다. 작은 손짓 발짓으로 자신감 없이 주춤대고, 절망인지 슬픔인지 분노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을 폭력적으로 몸으로 쏟아내는 인물이 호석"이라고 캐릭터를 해석했다.
그런 호석의 아내 미옥 역은 전도연이 맡았다. 밝고 잘 웃는 캐릭터다.
전도연은 "호석도 아들 철이도 조금씩 문제가 있지만, 미옥은 이를 정상이라 믿고 가정을 끝까지 지키려는 의지가 강한 여성"이라며 "자유에 대한 욕망이 드러나지만, 가족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지키려는 의지가 더 강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전도연은 분분한 제목 해석에 대해 "미옥에게 가능한 사랑은 이 가족과 집이라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 같다"고 해석했다.
영화는 2시간 40분의 긴 러닝타임을 속사포 대사보다는 침묵의 응시로 채웠다. 특히 호석과 미옥을 다큐멘터리로 찍는 감독 예지(조여정 분)는 끊임없이 이들을 관찰한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에는 카메라로 찍는 예지, 이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 모든 것을 초월한 CCTV의 시선이 등장한다"며 "더 나아가 관객들이 자신의 시선을 스스로 느끼길 바랐다"고 밝혔다.
그는 "해고 노동자의 고통을 직접 다루기보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하면서 제 태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생겼다"며 "해고 노동자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가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짚었다.
이날 특별 상영에 참석한 LA 관객들은 이 감독의 설명이 끝날 때마다 박수로 화답하며 메시지에 공감을 표했다.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영화 부문 출품작으로 선정돼 오스카상 수상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