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율 억제를 목적으로 10년 넘게 세금을 쏟아부어 담뱃값을 6만 원 선까지 끌어올린 호주에서 역풍이 일고 있다. 정식 제품의 5분의 1 가격인 밀수·불법 담배로 소비자가 대거 이탈하면서, 암시장이 합법 유통망을 집어삼키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됐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호주 당국은 최근 통제 불능 수준으로 팽창한 불법 담배 유통 조직을 소탕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질환 예방 명분으로 고율 과세를 지속한 결과, 현지 담배 한 갑 가격은 약 60호주달러(약 5만7000원)까지 치솟았다. 2016년 12월 대비 세 배 넘게 뛴 가격이며, 판매액의 70% 이상이 세금으로 구성됐다.
지나친 가격 상승은 불법 거래 폭증이라는 부작용을 불렀다. 정규 제품의 20% 가격에 불과한 암시장 제품이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
호주 규제 당국은 지난해 기준 암시장의 점유율을 55% 수준으로 추산했다. 연간 거래 규모만 85억 호주달러(약 8조 원)에 달하는데, 이는 현지 마약류(대마초·코카인·엑스터시·헤로인) 시장 전체를 합친 규모의 두 배 수준이다. 제임스 마틴 디킨대 교수는 "암시장이 사실상 대형 담배 기업 구실을 하고 있다"며 유례없이 기형적인 시장 형성을 지적했다.
유통망 확대는 강력 범죄로 번졌다. 온라인과 임시 가판대를 넘어 이발소, 청과물점 등 일상 상권 깊숙이 파고들었고, 멜버른과 시드니 등지에서는 판매권 갈등에 따른 방화와 피살 사건까지 발생해 지금까지 3명이 목숨을 잃었다. 테오 푸카레 편의점업계 대표는 "정품을 탈취해 뒷골목에 되파는 강도 행각까지 빈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수 결손도 가시화됐다. 2020년 160억 호주달러(약 15조 원)로 정점을 찍었던 담배 소비세 징수액은 반토막 났다.
2030년에는 20억 호주달러(약 1조8000억 원)까지 급감할 것이란 재무부 관측도 나왔다.
경제학자 크리스 리처드슨은 국민 건강 증진과 세수, 범죄 억제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완전한 실패"라고 진단했다. 상원 권고와 야당의 세율 인하 압박에도 마크 버틀러 보건부 장관은 고율 과세 기조를 사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5년 이후 11년째 4500원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WHO 보고서상 한국 담뱃값은 3.25달러 수준으로, 17.21달러에 달하는 영국 등 주요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다.
정부는 지난 8월 세제 개편안에서도 일반 궐련 인상안을 배제했다. 4500원 중 세금·부담금 비중이 70%를 웃돌지만, 2015년 80% 인상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58%포인트 끌어올렸던 전례가 있어 물가 충격을 우려해 동결 기조를 이어가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