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 메이킹 영상에서 배우 이민정이 '야르'를 사용한 장면이 공개되며, 최신 신조어로 알려진 '야르'가 2003년부터 사용돼 온 표현임이 밝혀졌다.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군 감탄사 '야르'가 사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사용돼 온 표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다.
엑스(X·옛 트위터)에는 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 메이킹 영상이 게시됐다. 영상 속에서 배우 이민정은 아역 배우에게 "'야르'는 알지?"라고 묻는 장면이 포착됐다. 1020세대가 즐겨 쓰는 유행어 '야르'가 15년 전에도 이미 통용되던 단어였던 것이다.
영상이 공개된 후 온라인 커뮤니티는 순식간에 들썩였다. 2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뛴 '야르'는 단순 감탄사를 넘어 '야르하다'와 같은 서술어로 진화하며 세대를 가로지르는 유행어가 됐다.
'야르'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배우 봉태규는 2023년 5월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봉태규입니다'에 출연해 2003년 개봉한 영화 '바람난 가족'의 애드리브로 '야르'를 처음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대중매체에서 '야르의 원조'라고 설명했다.
2006년 1월 포털 사이트 네이버 오픈사전에는 '야르'가 "10대들 사이에서 '좋다'라는 뜻으로 쓰인다"라는 설명과 함께 등재됐다.
2008년 5월 MBC 예능 '무한도전 제1회 무한 창작동요제'(105회) 특집에서도 방송인 정형돈이 노래를 부르며 "야르"라고 외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과거 사용 기록이 잇따라 확인되자 누리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최신 신조어인 줄 알았는데 충격이다", "옛날 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등 댓글이 쏟아졌다.
학창 시절 실제로 '야르'를 사용했던 3040세대는 반가움을 표했다. "요즘 '야르'가 다시 유행하는 걸 보면 관을 열고 고대 유물이 튀어나온 기분", "2000년대 초반 친구들이 매일 썼던 표현", "90년대생인데 초등학생 때 분명히 썼다" 등 과거 경험을 공유했다.
최근 쓰이는 '야르'는 과거와 다른 문법적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2000년대 초반의 '야르'는 "앗싸!", "나이스!"처럼 기쁨이나 흥분을 표현하는 일회성 감탄사에 그쳤다. 2006년 네이버 오픈사전에 등록된 설명에는 '경남에서는 '야르'를 감탄사로 쓰지만 서술어로는 안 쓴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020세대는 접미사 '-하다'를 결합해 활용한다. "이 음식 야르하다", "분위기 야르함"처럼 대상의 상태나 속성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서술어로 문법적 확장이 이뤄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행어의 재유행 배경으로 방대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지목한다. 과거 유행어가 사라지지 않고 온라인 공간에 보존되면서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남길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기록이 거의 남지 않아 (유행어) 쓰임이 멈추면 사실상 사라진 것과 같았다"며 "2000년대 이후에는 방송 영상, 포털 사전, 게시판 글 등 디지털 기록이 남아 있어 과거와 현재 유행어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흔히 신조어는 세대 간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오히려 1020세대와 3040세대가 같은 말을 두고 서로 다른 언어 기억과 경험을 나눈 것"이라며 "언어문화적으로 흥미롭게 생각된다"고 말했다.
동일한 단어를 둘러싼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자연스러운 소통의 단초가 된다는 분석이다.
윤석민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세대마다 단어의 뜻과 쓰임새가 다른 것은 당연하고 이런 차이에 대한 인식이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과정"이라며 "앞으로 '야르'가 어떤 변천 과정을 겪을지 지켜보는 것은 우리 사회에 세대 간 언어 사용의 차이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