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처음 증언한 고(故) 배봉기(1914∼1991) 할머니의 삶이 일본의 전통 가면극 '노(能)'로 재탄생해 도쿄 무대에 오른다.
29일 일본 극단 시어터 노가쿠는 배봉기 할머니의 생애를 다룬 신작 '배봉기'를 다음 달 3일 일본 도쿄도 나카노구 우메와카노가쿠가쿠인 회관에서 상연한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은 미국 켄터키주 출신 연출가이자 시어터 노가쿠 창립 멤버인 게리 매튜가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은퇴 후 일본에 정주한 매튜는 가와다 후미코의 저서 '빨간 기와집(1987)'을 원작 삼아 5년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다.
배 할머니는 가난한 형편 속에 "나무 밑에 누워 입을 벌리면 바나나가 떨어지는 곳이 있다"는 취업 사기성 꾐에 넘어가 1944년 일본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1945년 일본 패전 이후에도 귀환하지 못한 채 오키나와에 머물렀던 배 할머니는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 영토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불법체류자로 분류돼 강제 퇴거 위기에 몰렸다.
당시 일본 출입국관리사무소의 3년 특별 체류 허가 심사 취조 과정에서 과거 위안부 피해 사실이 드러났다. 배 할머니는 특별 체류 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
매튜 연출가는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문화인류학자 지인의 연구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증언집과 관련 서적을 폭넓게 읽었다"고 밝혔다.
그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전하고자 했던 삶의 궤적과 내면의 강인함을 일본 전통 가면극 양식에 담아내기 위해 도카시키섬을 직접 답사하며 무대를 준비했다. 극단 측은 이번 도쿄 초연을 시작으로 한국과 대만, 미국 순회공연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