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장인정신으로 명성을 쌓아온 명품 브랜드 구찌가 중국 생산 신발을 시장에 내놓았다. 한 켤레 가격이 100만원을 넘는 고가 신발을 이탈리아가 아닌 중국에서 제작한다는 점에서 업계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구찌는 신제품 스니커즈 '드립(Drip)'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표시를 부착해 판매 중이다. 로이터는 구찌 공식 홈페이지와 프랑스 파리 매장에서 해당 표기를 직접 확인했다고 전했다.
드립은 지난해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데므나가 디자인한 첫 구찌 스니커즈다. 끈 없는 양말 형태 디자인이 특징이며, 나일론과 캔버스, 스웨이드 소재를 사용했다. 지난달 '프리마베라' 컬렉션으로 출시됐으며, 유럽 시장에서 약 800유로, 미국 시장에서는 100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 생산은 드립에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컬렉션의 가죽 슬립온 스니커즈 역시 구찌 홈페이지에 중국산으로 명시돼 있다. 다만 홈페이지에 원산지가 표기된 나머지 구찌 신발 제품들은 전부 이탈리아산이다.
구찌는 원가 절감 목적으로 생산 거점을 변경했다는 해석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었다. 구찌 측은 "이탈리아는 앞으로도 구찌 생산 모델과 정체성의 핵심"이라며, 이번 중국 제조사 선정은 해당 신발 제작에 필요한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계나 안경 제작 시 스위스·일본 업체와 협력해온 방식과 유사한 선택이라는 것이 회사 측 입장이다. 중국 이외 지역으로 생산을 대규모로 이전할 계획은 없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업계가 이번 결정을 주목하는 배경에는 구찌가 처한 현실이 있다. 모기업 케링의 주력 브랜드인 구찌는 최근 3년 사이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고, 수익성 악화로 인해 수십 개 매장을 폐쇄했다.
명품 시장 전체가 유사한 난관을 마주하고 있다. 고물가와 경기 위축으로 중산층 소비자들이 고가 가방과 의류 구매를 줄이면서 LVMH, 케링 등 글로벌 명품 그룹들이 성장 정체를 겪는 중이다. 브랜드들은 가격을 유지하며 희소성을 지켜야 하는 동시에, 지나치게 높아진 가격 때문에 젊은 세대와 중산층 고객이 떠나는 것도 막아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일부에서는 중국산 라벨이 구찌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불가피하게 손상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100년 이상 피렌체와 이탈리아 장인정신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강조해온 구찌에게 생산지는 제품 가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인식돼왔기 때문이다. 반면 첨단 신발 제조 기술과 복잡한 소재 가공 분야에서 중국 제조사의 경쟁력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