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은행지주 회장들에게 자회사 최고경영자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대폭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23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오전 은행연합회장과 KB·신한·하나·우리·NH농협·BNK·iM·JB금융 등 8개 은행지주 회장들과 조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원장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자회사 CEO를 선임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올해 초부터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오랜 시간 함께 머리를 맞대고 CEO의 참호 구축을 지양하고 승계 절차를 공정하게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춘추시대 진나라 충신 기황양의 고사를 소개하며 인재 천거의 공정함을 강조했다. 기황양은 밖으로는 원수를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아들도 피하지 않는 자세로 적임자를 추천했다는 일화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내부 통제, 소비자 보호까지 책임질 CEO 선임 절차가 특정 계파나 친소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능력에 기반한 적임자를 선별하는 절차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주회사가 후보를 사실상 결정하고 자회사 이사회가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 검증과 평가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원장은 "CEO가 지녀야 할 구체적인 자격 요건과 평가 단계별 최소한의 검증 기간 등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절차를 아직까지 마련하지 못한 지주사는 선임 절차 개시 전에 미흡한 사항을 조속히 보완해 달라"고 요구했다.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역할 확대도 주문했다. 이 원장은 "CEO 후보 추천 및 선정 과정에서 자회사 임추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지주가 관리하는 CEO 상시 후보군 정보를 자회사 임추위에 충분히 제공하고 후보 평가에 임추위원의 의견을 반영하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원장은 CEO 후보군 선정과 검증·평가, 의사 결정 기록 등 승계 전 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준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금감원은 15일 임원회의에서도 상당수 금융지주의 자회사 CEO 승계 절차가 미흡하고 자회사 임추위의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CEO 자격 요건이 추상적이거나 후보 압축 단계별 검증 기간이 없고 상시 후보군을 형식적으로 관리하는 사례가 있다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최근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연임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던 양종희 현 회장 대신 이재근 KB금융 부문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정한 것도 금융권의 주목을 받았다. 법으로 회장 연임 횟수를 일률적으로 제한하지 않더라도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례로 평가됐다.
금융지주들은 자회사 CEO 선임 절차를 잇달아 개선하고 있다. BNK금융은 16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지주와 9개 자회사의 경영 승계 절차 개선안을 의결했다. 모든 자회사의 승계 절차를 CEO 임기 만료 3개월 전에 시작하도록 통일하고 후보자를 단계별로 검증하는 최소 기간을 10일에서 10영업일로 늘렸다.
BNK금융은 은행 임추위에 CEO 후보 추천권을 부여했다. 지주가 관리하는 후보자 정보를 공유하고 은행 임추위원장이 최종 면접에 참석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새 절차는 올해 말 대표 임기가 끝나는 BNK경남은행과 BNK투자증권 등 7개 자회사 인사부터 적용된다.
신한금융도 21일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12개 자회사 대표의 승계 절차에 착수했다. 신한금융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는 신한은행 임추위에 후보군 정보를 공유하고 후보 추천권을 주기로 했다. 기존에는 은행 임추위가 은행장의 자격 요건을 정하고 지주가 후보를 선정했다면 앞으로는 은행 임추위가 후보 발굴 단계부터 참여한다.
5대 금융그룹에서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계열사 CEO는 하나금융 13명, 신한금융과 우리금융 각 12명, KB금융 10명, NH농협금융 7명 등 총 54명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장의 임기도 모두 12월 31일 만료된다.
금융권에서는 자회사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권한과 책임이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룹 전체의 실적과 전략은 지주 회장이 책임지는데 핵심 자회사 CEO 선임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책임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감독당국이 후보 추천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요구하면 사실상의 인사 개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