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23일(수)

1조 원대 '설탕·밀가루 담합' 과징금 줄줄이 브레이크... 법원, '집행정지' 신청 인용

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천억 원대 과징금 처분에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설탕과 밀가루 가격 담합 제재를 받은 식품업체들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줄줄이 받아들이고 있다. 향후 이어질 본안 소송에서는 담합이 실제로 영향을 미친 거래 범위를 어떻게 확정할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달 17일 삼양사가 밀가루 가격 담합 관련 처분에 불복해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과징금이 그대로 집행될 경우 삼양사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집행을 정지하더라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공정위 측 주장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같은 날 사조동아원 역시 1,831억 원 규모의 과징금 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대한제분에 부과된 1,120억 원 규모의 과징금 납부 명령 집행도 정지됐다.


공정위는 올해 5월 삼양사,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업체가 2019년부터 작년까지 밀가루 판매 가격과 물량을 담합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들 업체에 가격 재결정 명령과 함께 총 6,71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기적 모임을 통해 가격 인상 시점과 폭을 조율하고 판매 물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분점했다는 게 공정위의 시각이다.


설탕 담합 사건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삼양사는 설탕 담합으로 부과된 1,303억 원의 과징금에 대해 지난 6월 집행정지 결정을 받았으며, 대한제당 또한 1,274억 원 규모의 과징금 집행이 중단됐다. 공정위는 설탕 업체들 역시 밀가루와 비슷한 방식으로 가격과 물량을 조율했다고 보고 제재에 나섰으나, 법원은 일단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제재 집행을 멈추라고 판단했다.


밀가루와 설탕에 이어 전분당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업체들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린다. 전분당 업체들 역시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받은 상황에서 설탕·밀가루 업체들의 집행정지가 연이어 인용되자 동일한 방식의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 인사이트


다만 집행정지는 임시 조치에 불과하며, 과징금 처분의 적법성은 본안 소송에서 최종 가려진다.


업체들은 공정위가 과징금 산정 기준으로 삼은 매출 범위와 담합 기간을 집중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담합 기간에 발생한 거래라 할지라도 담합 이전에 이미 가격이 확정된 거래까지 과징금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한지가 핵심 다툼 요소다.


공정위는 원칙적으로 담합 기간 중 발생한 매출 전체를 과징금 산정 대상으로 본다. 반면 업체들은 담합 회의가 열리기 전 이미 가격이 확정된 거래까지 포함하는 것은 부당하며, 담합의 영향을 받지 않은 거래까지 제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담합 기간 설정 역시 쟁점이다. 공정위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를 담합 기간으로 보았으나, 업체들은 실제 합의가 가격에 영향을 미친 기간은 그보다 짧다고 반박할 가능성이 크다. 담합 회의가 존재했더라도 실제 시장 가격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 해당 기간을 제재 대상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지난달 2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탕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 뉴스1


식품 제조용과 산업용 거래의 차이도 주요 변수다. 설탕, 밀가루, 전분당은 빵이나 과자 등 식품 제조뿐만 아니라 제지나 화학 제품 등 산업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업계는 두 용도의 거래 구조와 가격 결정 방식이 확연히 다르므로 산업용 매출까지 과징금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식품용은 소량 다빈도 거래가 많아 가격 조정이 자주 일어나는 반면, 산업용은 대량 장기 계약이 많아 가격이 오래 유지되므로 담합의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반면 공정위는 담합 합의가 존재했다면 해당 기간의 모든 매출이 원칙적으로 제재 대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담합 회의 논의 내용이 실제 거래에 미친 영향을 일일이 규명하기 어렵고, 담합 행위 자체가 시장 질서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엄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이번 사태는 국내 식품 원재료 시장 전반을 흔들고 있다. 밀가루, 설탕, 전분당 담합 사건에 부과된 과징금 총액은 1조 원을 상회한다. 업체들은 대규모 과징금을 한꺼번에 납부할 경우 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고 호소하며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법원의 최종 판결은 향후 공정위의 제재 행정 방향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법원이 과징금 산정 범위를 좁혀야 한다고 판단할 경우 공정위는 향후 담합 사건에서 영향을 받은 거래를 더욱 세밀하게 특정해야 한다. 반대로 공정위의 손을 들어줄 경우 담합에 대한 강력한 제재 기조가 유지될 것이다.


서울 시내 마트 밀가루 코너 모습 / 뉴스1


본안 소송은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수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1심 판결 이후 항소와 상고가 이어지면 장기전이 불가피하다. 소송 기간 동안 업체들은 과징금 납부를 미룰 수 있지만, 최종 패소할 경우 그간의 이자까지 가산해 납부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