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윤아가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공개하며, 그 증오와 아픔이 자신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온 원동력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EBS 다큐멘터리 시리즈 '시대목격' 7회는 29년간 음악 인생을 이어온 뮤지션 김윤아의 삶을 다뤘다. 김윤아는 이날 방송에서 화려한 무대 이면에 감춰졌던 가족사와 그로 인한 상처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김윤아는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함께 자랐다. 어린 날 겪어야 했던 고통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훗날 그의 음악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정서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개인의 삶과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내온 김윤아의 솔로 2집에는 인간의 우울과 불안이 깊이 새겨져 있다.
김윤아는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제 경험이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분들한테 알려서 많은 피해자분들한테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자신의 고통을 음악으로 표현해온 김윤아에게 타인의 상처를 노래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그는 솔로 4집 '타인의 고통' 작업 당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내면과 아픔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고민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김윤아는 개인의 상처를 넘어 사회적 고통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자우림의 'Fade Away', '狂犬時代(광견시대)' 같은 곡을 통해 사회적 아픔과 시대에 대한 메시지를 음악에 담아냈다.
이날 방송은 상처를 음악으로 승화시켜온 김윤아가 29년 차 여성 뮤지션으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도 보여줬다.
이랑은 "중년 여성 아티스트라는 게 너무 귀한 위치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활동하는 독립음악 쪽만 해도 40대가 넘어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이 정말 드물다"고 했다. 선우정아도 오래 활동하는 여성 뮤지션이 드물다는 점을 언급하며 김윤아의 존재 덕분에 "당연하게 오래 활동할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윤아는 1990년대 후반 자우림으로 가요계에 입문했다. 발라드와 댄스 팝이 음반 시장을 지배하던 시기, 영화 '꽃을 든 남자' OST 'Hey, Hey, Hey'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김윤아는 직장인 손님이 많은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하던 시절 영화 타이틀곡 제안을 받고 여러 곡을 준비했지만 예상 밖으로 블루스곡 'Hey, Hey, Hey'가 선택됐다며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음악이 전혀 아니었다. 그걸 신선하다고 좋아해 주신 게 너무 신기했다"고 회상했다.
자우림의 대표곡 '일탈'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윤아가 대중이 듣고 싶어 할 이야기를 고민하며 만든 이 곡은 원래 1집 타이틀곡을 목표로 뮤직비디오까지 완성했지만, 가사가 사회적 불안이나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방송 출연 없이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었고, 2020년대에도 페스티벌의 대표적인 떼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방송에서는 김윤아의 음악이 팬들의 삶에 미친 영향도 소개됐다. 자우림 콘서트를 한 번 더 보는 것을 버킷리스트로 삼았던 한 팬은 자우림의 공연이 삶을 내려놓지 않고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갈 계기가 됐다는 사연을 전했다.
방송 마지막 김윤아는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그는 "조금만 버티면 20대에 독립할 수 있고 네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고 싶다"며 "'버텨'라는 의미는 아니고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겪은 상처와 증오를 음악으로 표현했던 어린 김윤아는 결국 좋아하는 일을 평생 이어가는 뮤지션이 됐다. 자신의 고통에서 시작된 노래는 이제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하는 음악으로 남아 있다.
EBS 다큐멘터리 시리즈 '시대목격'은 12개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시대를 관통한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 9시 10분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