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째 이어온 삼성의 신입사원 공개채용이 올해도 계속된다. 경력직 중심으로 채용 방식이 빠르게 재편된 국내 기업 채용시장과 달리 삼성은 신입 공채를 유지하며 청년들에게 정기적으로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7일 삼성전자는 내일(8일)부터 올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개채용 절차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채에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생명,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중공업, 삼성E&A, 호텔신라,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의료원, 삼성웰스토리 등 19개 관계사가 참여한다. 지난 상반기 공채보다 참여 계열사가 한 곳 늘었다.
삼성의 신입 공채는 올해로 70년째를 맞는다. 삼성은 1957년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신입사원 공채 제도를 도입한 이후 외환위기 등 극히 이례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공채를 이어왔다. 4대 그룹 가운데 현재까지 정기적인 신입 공채를 유지하고 있는 곳도 삼성뿐이다.
삼성의 공채 유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국내 채용시장의 흐름과 뚜렷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업무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선호하면서 신입보다 경력직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초 100인 이상 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규 채용 계획을 세운 기업은 60.8%에 그쳤다. 반면 중고신입 채용이 늘면서 신입 채용 과정에서도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본다는 응답이 81.6%에 달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상반기 기업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10곳 중 8곳이 경력직을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직무 경험을 쌓을 기회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졸 청년의 절반 이상이 재학 중 직무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오면서 '경력이 있어야 취업할 수 있지만 취업해야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구직자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공채는 별도의 경력이 없는 사회 초년생에게도 동일한 출발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직무 경험이나 경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채용시장에서도 신입사원을 별도로 선발해 교육하고 현장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인재를 직접 육성하기 때문이다. 매년 수십만명이 삼성 공채에 몰리는 것도 이 같은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신입 채용에 대한 청년들의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공채는 기업 입장에서도 장기적인 인재 확보 수단으로 기능한다. 당장 필요한 인력을 선발하는 경력 채용과 달리 신입 공채는 성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해 회사의 사업과 조직문화에 맞는 인재로 육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반도체·바이오·인공지능 등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미래 산업에서는 필요한 인력을 외부에서만 수혈하기보다 젊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삼성은 공채를 통해 채용의 문을 넓히는 한편 학연과 지연 등 연고주의를 배제하고 열린 채용 문화를 확대해왔다. 1993년 대졸 여성 신입사원 공채를 신설했고, 1995년에는 지원 자격 요건에서 학력을 제외하는 등 성별과 학력에 따른 진입장벽을 낮추는 제도를 도입했다.
삼성이 70년간 공채를 이어온 배경에는 '인재제일'과 '사업보국'이라는 경영철학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도 자리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취임 이후 인재 확보와 육성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2022년 회장 취임 당시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고 밝히며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영입하고 양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8월 대통령실 간담회에서도 대미 투자와 별개로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2월 청년 일자리와 지방 투자 관련 기업인 간담회에서는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채용을 확대할 여력이 생겼다며 추가 채용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이 회장은 정부의 청년 고용 확대 요청에 맞춰 향후 5년간 6만명을 신규 채용하고 미래 성장산업 육성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