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05일(토)

대법 "영화관서 시·청각장애인에 자막·화면해설 제공해야"

영화관에서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과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불법 차별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과 함께 장애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문장과 그림으로 설명한 '이지리드 판결서'를 처음으로 제공해 눈길을 끌었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천대엽)는 3일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들이 영화관 운영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영화관 측 상고는 기각했다.


원고 측은 영화관들이 화면해설, 자막, 수신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행위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영화관이 직접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작하라는 게 아니라, 제작·배급사나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막·화면해설 파일을 재생할 장비와 관련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대법원 / 인사이트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며 영화관들에게 자막·화면해설, FM 보청기기, 웹사이트 정보, 점자·큰글자 문서, 수어·문자 안내를 모두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2심은 영화관의 차별 행위는 인정하면서도 제공 범위를 축소했다. 화면해설과 자막을 모두 갖춘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은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나뉜다. 개방형은 모든 관객에게 자막·해설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고, 폐쇄형은 필요한 관객이 별도 기기로 받는 방식이다.


2심 재판부는 개방형의 경우 300석 이상 상영관이나 전체 좌석 300석 초과 복합상영관의 상영관 1곳 이상에서 전체 상영 횟수의 3%만큼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도록 했다.


폐쇄형은 같은 기준의 상영관에 화면해설 수신기기와 자막 수신기기를 각각 2개 이상 비치하고 서버를 제공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이를 넘어서는 의무 부과는 업체에 과도한 부담이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영화관이 화면해설·자막과 수신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이라는 2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영화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한 정보에 해당하며, 장애인이 영화에 접근하고 즐길 권리는 개인의 자아 발전과 사회 참여는 물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판시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다만 대법원은 2심이 상영관 규모와 상영 횟수라는 두 가지 기준을 중복 적용해 구제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의 영화 접근권보다 영화관 업체의 재정 부담을 과도하게 고려한 나머지 법원의 재량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심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즐기면서도 영화관의 비용을 줄일 방법이 있는지, 비장애인의 관람 방식에 과도한 혼란을 주지 않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문화적 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기준은 무엇인지 등을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원이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의 내용과 범위를 정할 때는 장애인의 권리와 영화관 운영사의 재산권·경영의 자유를 균형있게 고려해야 한다"며 "어느 한쪽의 이익을 지나치게 크게 또는 작게 반영하면 위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어느 상영관에서 얼마나 자주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의무 범위는 서울고법이 다시 심리해 정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날 선고에는 청각장애인과 청각·언어장애인인 원고들을 위한 수어통역이 제공됐다. 대법원은 원고 중 2명의 신청을 받아 일반 판결문과 별도로 3쪽 분량의 이지리드 판결서를 제공했다. 이지리드 판결서는 판결의 핵심 내용을 간명한 글과 시각자료로 설명해 장애인 등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한 문서다.


대법원에서 이지리드 판결서가 제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최종심에서 단순한 판결 요지나 안내를 넘어 판결서 자체의 내용을 이지리드 방식으로 작성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